♧ 토산 노단샘
- ‘용천수의 꿈’ 홍진숙 그림전시회를 보고
곶자왈 숲에 이야기꽃이 피어나듯
고사리 병풍 치며 푸르름이 솟아나듯
네모반듯한 애기구덕 안에
노단샘이 누워 있다
맑고 투명한 얼굴로
깨끗하고 정의로운 삶을 꿈꾸는
제주의 아들딸들에게
생명의 젖줄을 건네고 있다
삶의 길도
곧장
노단 길로 가당 보민
언젠가는 모두
바당에서 만나게 되리
♧ 태곳적 여인
- ‘오름에서 별을 헤다-12’ 홍순용 전시회를 보고
여인이 모로 누워있다
시름에 뒤척이다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간 한숨 소리
밤하늘 수놓았다
밤이 새도록 별을 해이다
살포시 초승달을 하늘에 걸어놓고
여인이 모로 누워있다
♧ 성에 낀 유리창
- ‘세한 설송’ 홍순용 전시회를 보고
설 아침 작은 보폭으로 아버지 뒤를 따랐다
이마 위에 하안 꽃잎 사르르 녹아내리고
입술 위에서 배추흰나비 달싹거렸다
동산 위 소나무밭 가까워질수록
세찬 눈바람 밀려와 눈앞이 흐려졌다
뻣뻣해진 얼굴 외로 돌리고
침묵을 삼키며 따라가던 길
눈바람은 넋두리 같은 꼬장꼬장한
아픈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소나무는 죄인처럼 점점 고개를 숙이던 풍경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에
눈물이 번진 것 같은 소묘
마을 어귀 들어서면
돌담 의지하여
툭툭 눈을 털어내면
푸른 솔가지 같은 새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 (한그루, 2024)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8) (0) | 2024.05.12 |
---|---|
계간 '제주작가' 봄호의 시(4) (0) | 2024.05.11 |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7) (0) | 2024.05.09 |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7) (1) | 2024.05.08 |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9)와 유동 꽃 (0) | 2024.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