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직 산을 모른다 - 김진숙
베트남으로 기는 비행기 안에서
『호치민평전』을 읽다가 그 나라를 부러워한 적 있다
나는 모른다
아직 불러주지 못한 당신의 이름을
죽음이 삶을 떠안고 무성해진 숲의 내력을
해방된 세상에서 통일의 꿈을 꾼 산의 의지를
나는 아직 모른다
산은 지주 금속성 소리로 운다
까마귀 돌아오고 탐지기가 울 때마다
쿵쿵 뛰는 심장이 먼저 화답하는 날이면
산은 물러서지 않았으며 벼랑 끝에서도 살고자 했다고
부러진 숟가락과 깨진 솥단지를 읽는다
녹슨 불발탄 같은 오후,
나는 아직 산을 모른다
막걸리 한 잔 올리고 두 손 모아 절을 올리고
서 있는 방향도 모른 채 일요일의 시계를 따라갈 뿐
오늘도 산으로 가는 길은 산사람을 마중하는 일
끝까지 세운 사람들 무거운 정신을 만나는 일
그리고 나는 다만, 듣고 싶은 것이 아직 많다
♧ 그녀와 나 - 김항신
다중 100호 축제 있던 날
커피와 망고스무디 생강차
행사는 무르익어
아메리카노, 어디세요~, 웃음의
경지는~아름다위
생강차 커피와 소금
빵
하나,
그녀는 찹찹, 쿠키도 달달
그래도 안 불은 살과 뼈의
신자는
맛있어 미각에 궁금해지는 시(示) 각
막물에 도착한 생강차와 크림빵,
그 맛을 음미한다
귀(耳)는 詩극 마임을 먹는데
귀(耳)는 ‘아이디얼스’ 노래를 먹는데
눈(目)은 ‘id:earth’,를 먹는다
소금
빵 쿠키에 붙는
살과 뼈 항이는
막이 내리고~~
♧ 설문대할망의 외로움 - 문무병
제주땅[耽羅國]에 할망이 제 그림자로 만든
제주도는〈누워 있는 한라산〉이라는
힘이 세고, 키가 커 외로운 할망을
세상의 벗으로 만든 ‘잠든 한라산을 깨우는 이야기’였고,
70년대 지어진 19층의 칼 호텔을
<할망의 손가락>만 하다 했던 나의 시는
제주 사람의 ‘하나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주보다 크고 힘센 할망이 ‘가진 많은 것’
‘풍요(豊饒)’라는 신성(神性) 때문에
제주 사람들에겐 큰 것 콤플렉스,
할망은 너무 크고, 너무 많고, 너무 세어 슬프고,
할망이 만든 제주 사람은 너무 작고,
가진 건 너무 적어 모자람을 채우지 못하는 슬픔,
‘설문대할망 콤플렉스’
“너무 힘이 세고, 키가 크기 때문에 외롭다.”는
‘하나의 외로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제주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신으로 모신
제일 큰, 더 이상 더 클 수 없는
설문대할망의 ‘하나의 외로움’을 그린
한류의 전통인 ‘한’,
제주 땅을 만든 ‘한’,
새 생명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창세의 이야기였다.
*계간 『제주작가』 봄호(통권 제8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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