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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제주작가' 봄호의 시(5)

by 김창집1 2024. 5. 13.

*불가촉천민

 

 

밤의 문인화 - 서안나

 

 

검은색에 새가 산다 뼈가 있다

길게 달려가는 해안선도 있다

 

어머니 난초를 치고

물오리 그릴 때

나는 먹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진하게 갈아라

더 캄캄하게 낮게 어두워지렴

 

먹을 갈면

귀퉁이부터 무너지는 새

수심이 깊었다

불가촉천민들이 걸어 나온다

나는 얼마나 더 캄캄해져야 하는 걸까

 

어머니는 어쩌자고 화선지에

세상천지 젖은 눈빛을 다 불러들였을까

 

어머니는 흰색을 열고 닫아

겨울 오리 몇 마리 연못에 단추처럼 앉힌다

물오리가 어머니를 끌고 간다

 

손가락으로 그 물결 짚으면

검은색은

저녁을 그림자처럼 밟는 마음

손도 얼굴도 뭉툭한

 

 

 

 

물고기에 비친 근황 - 안은주

 

 

바다에 갔어요. 바람 곶도 아닌데 작은 바람에도 파도들이 부풀어 올라오고 있었어요.

그 위로 일광에 반사된 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정서가 출렁이고 있었어요.

 

등대가 있는 곳에서 낚시꾼과 눈이 마주쳤어요. 나도 모르게 인사를 꾸벅했어요. 그 사람도 엉겁결에 인사하더군요.

 

웬 비릿한 냄새가 바다에 떠다녔어요. 그 냄새에 멀미를 했지요.

 

그때 제 눈에 낚싯줄에 끌려 나온 저 물고기가 들어왔지요. 물고기를 보면서 먹먹했어요.

 

시울 끝에서 물고기는 소리 없는 울음을 꺽, 꺽 계속 토해놓고 있었어요. 뻣뻣해져 가는 물고기를 모른 체 하고 돌아선 후 배후가 사라져 버렸어요.

 

보이지 않게 쓸려가는 현실 앞에서 우린 모두 물고기 같아요. 매일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며 숨이 가쁘잖아요.

 

마치 바다 속 좁쌀 같이 흘러갈 뿐이에요. 사정없는 바다로 가요. 이게 내 개획이에요.

 

지글지글 끊는 마음이 집이지는 한낮, 바다와 물고기는 동색처럼 경계도 없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어요.

 

물고기만보면

바다에서 물이 새더라고요.

 

그러니 이제 바다로 돌아갈까요, 우리.

 

 

 

 

He story 5 - 양동림

   -탁발순례단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어야 함을 압니다.

평화는 모심과 살림이며, 섬김과 나눔의 다른 이름이요,

함께 어울림이며, 깊이 사귐입니다.

생명평화의 길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념이요,

깨어있는 선택이며, 지금 여기서의 행동하는 삶입니다.

- <생명평화결사서약문> 중에서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하며 걷는다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생명평화결사 서약문을 쓰고

매일 15km씩 걸으며 깨어 있는 선택을 한다

생명의 소중함은

빨강인지 파랑인지를 가리지 않는다

비둘기의 무게만큼 허벅지살을 올려놓는다고

저울이 균형을 평형을 유지하는

그런 것에는 생명이 없다

 

초록이 생명인 양 지천으로 솟아나는 5

순례단의 걸음을 멈추게 한 속냉이골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우거진 덤불 속은 냉기가 서려 있었다

먹먹한 가슴 여미고 극락왕생을 빌며

불사른 향초에서는 귤꽂 향기가 피어올랐다

갈 곳 잃어 지천으로 떠돌던 시신들

구덩이에 버려져 방치되어 삭았고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솔방울들이

덤불 속으로 총탄처럼 툭 떨어지고 있었다

 

우익과 좌익 모두 이념대립의 희생자

학살된 민간인, 군인 경찰과 무장대

그 모두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 희생된 내 형제 내 부모

평화의 섬을 꿈꾸는 제주도, 바로 이곳에서

대립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명평화의 통일시대를 간절히 염원하며,

방치된 묘역을 다듬고 천도재를 올린다

스치며 기억하던 영혼들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며

덧없는 죽음은 없어야 한다고

탁발승들이 독독독 목탁을 친다

 

 

 

 

인간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 양영길

    -꼰대론 1

 

 

보통 사람들이 모여

정치인들이 토해낸 오물들을 치우고 닦아내야 했다

 

구역질나는 냄새를 피해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만 보며 일 시키던 인간이

하는 일이 좀 못마땅할 때마다

- 야 야, 그걸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 이 인간아!

- 야 야 야, 에씨, 저 인간은 뭐 하는 거야!

삿대질까지 했다

 

인간아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걸레를 내팽개치며

핏대를 세웠다

, 우리가 인간입니까?

우리는 사람이라고요, 사람!

 

, ‘인간이나 사람이나 그게 그거잖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을 좀 제대로 하라는 거잖아, 내가 지적하지 않아도 되게

- - - 하자- -

 

알았어요, ‘사람이라고 불러주세요

왜 그러는데?

몰라요

불러줄 거에요, 안 불러줄 거예요?

알았어, 알았어

 

하여간, 요즘은 개나 소나 다 따지고 들어, 씨발

 

-, 이 인간아!

아니, 아니, 저 사람이!

 

, 삐뚤어지고 싶다

저 인간, 사람 되기는 글렀어

사람은 고쳐 쓸 수 있다는데

아니야, 인간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래

특히 양아치 같은 놈은

 

 

                      *계간 제주작가봄호(통권제8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