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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1)와 해바라기

by 김창집1 2024. 7. 10.

 

 

시집 증정 - 홍해리

 

 

1969년에 나온 내 첫 시집 투망도投網圖

정가 320원이었다

요즘 보니 경매에 나온 그 책

경매가가 30만 원이다

 

책을 소개한 글을 보면 증정본이라고 돼 있는데

내가 시집을 드린 분이 바로 은사 김시인 교수님

그사이 50년 넘게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이제 경매 사이트에까지 올라오게 되었나 보다

 

80년대 초 어느 해

새 시집이 나와 동료 교사에게 증정을 했더니

학기말에 좌석이 바뀌어 짐을 옮겨야 하는데

내 책이 휴지통에 처박혀 있었다

 

창피해서 몰래 꺼내 보니, 바로

고릴라란 별명의 수학선생 고가 그년이었다

돼지에게 던져 줄 걸

참 내가 눈이 삐었구나 했지.

 

 


 

목련 서병학

 

 

가지마다 알을 품고 부화시키는 듯

봉우리마다 새하얀 부리를 내밀더니

밤사이 알을 깨고 나온 자리에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나와 함께 마당에 핀

목련꽃 가지를 얼굴에 끌어당기며

유난히 목련꽃을 좋아했던 딸이

지난해에 분가를 했다

살던 방에 책 몇 권

장롱에 옷 몇 벌 남겨 두고

서른두 해를 같이 살았던 집을 떠나

멀리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활짝 핀 목련꽃 송이를 바라보면서

딸에게 전화를 건다

 

 


 

발단 오명현

 

 

  핸드폰에 눈을 빠뜨린 채 나에게 돌진해 오는 여인이 있다고 치자 나와 여인이 서로 부딪혀서 상해를 입었다 치자 그러면 누구의 과실 비율이 더 높을까 전방 주시 의무를 방기한 여인의 과실이 100%일 것이다 정말 그럴까 여인은 과실비율분쟁심사위원회를 찾을 것이다 제대로 박힌 눈으로 전방 주시 의무를 제대로 다했으면서도 방어 보행을 게을리한 나의 과실이 100%라고 주장할 것이다 어쩌면 고의가 개입된 정황이 농후하므로 200%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경미하고 경쾌한 타박상만 입은 보행 중 접촉 사고를 계기로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치자 이때에는 서로가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면서도 상대의 공로를 인정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사랑이 개입되면 수치數値는 무용하고 세상은 간편하다.

 

 


 

베이스캠프 - 윤순호

    -수락산 2

 

 

수락산 베이스캠프엔

에워싼 궁금증을 온몸으로 받아 주는

노란 모자 선생님의

꽃 이름 팻말 말고도

치렁치렁 걸린 등꽃 밑으로

방향을 놓친 일행을 모으느라

핸드폰이 3번 출구를 연발하고 있다

돌아앉은 벤치에선

손거울에 얼굴을 가둔 립스틱이

빨간 관심을 덧칠하는 중이다

노인의 등산복 주머니가

유에스비에 들떠 있는 아빠의 청춘

습관처럼 풀어내고 있다

짐짓

데시벨이 높은 스피커가

가늘게 흥을 돋는다

 

 

                     *월간 우리7월호(통권 43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