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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7)

by 김창집1 2024. 7. 11.

 

 

열매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로 맺으며

 

순백의 드레스처럼

맑은 영혼의 날이

영원히 지속하길 바라는

엄마의 염원 담아

너를 보낸다

 

사랑하는 딸아

언제나 맑고 밝게

가시받길 혹은 자갈길이 온다 해도

그 여정, 지혜롭게 해쳐나가는

그런 내 딸이 되어라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하며

사랑하는 아내로

사랑하는 남편으로

다정하게 따뜻하게 다가서는

그런 부부가 되기를

그런 부모가 되기를

그런 자식이 되기를

 

축복이 함께하는

사랑하는 딸아

 

 


 

빗소리

 

 

마음의 풍금을 연다

노래비 흐르는 언덕길 따라

두 손 꼬오옥 잡고 걸어가는

엄마와 아들

음률 타고 들려오는

속삭임

 

엄마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더라

빗소리가 그냥 좋아서요

어깨에 톡톡 떨어지는

이 소리가 그냥 좋아서요

그렇구나

 

에야!

너는 커서 시인이 될 거야

 

 


 

벌랑포구

 

 

어머니 큰 울음 알리며

세상에 나오던 곳

 

외할아버지

함흥에서 청진 바다 나들며

고기 실어 나르던 포구

 

아들 여섯 딸 셋

 

물이 좋아 찾아온 새색시 마을

다소곳이 머물던 할머니 자리에

시홍 시종 시열 시영

그리고 순자 아버지와 의사 아들 이모까지 업고 키운

내 어머니 등 마를 날 없으시던

꽃 진 자리

 

거문여 버렁 사근여*

만선 휘날리며 귀향한

,

장 감 찬 구십삼 세 외할아버지

 

둠벵이 건너면 새각시 물**

생각나

 

---

* 지형이 새색시 허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 옛 마을 지명.

 

 


 

석양에 젖이

    -자화상

 

 

부모는

만삭인 몸으로 등지를 틀었다

그 둥지에 배곯은 돌멩이 얹혀 있다

 

못 먹어도 배는 불러

쥐방울처럼 작았다던 태둥이

물먹은 백ᄇᆞ름* 채 마르기도 전

거적때기 덮어뒀던 구석진 방에

돌덩이처럼 언 피 녹이며

꼼지락거렸을 상아

너는 모르고 나는 주워들었던 세월,

 

상록수를 넘기던

지란지교**는 어디로 갔는지

세월은

주야장천 덧없이 지지고 볶다

이제

석양 물결에 젖어보는 시간

때 되면

다시 부모 만날까

 

---

* 바람벽, 방 안의 벽.

** 유안진의 에세이에서 차용.

 

 

          *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한그루, 2024)에서

                           *사진 : 수채화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