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매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로 맺으며
순백의 드레스처럼
맑은 영혼의 날이
영원히 지속하길 바라는
엄마의 염원 담아
너를 보낸다
사랑하는 딸아
언제나 맑고 밝게
가시받길 혹은 자갈길이 온다 해도
그 여정, 지혜롭게 해쳐나가는
그런 내 딸이 되어라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하며
사랑하는 아내로
사랑하는 남편으로
다정하게 따뜻하게 다가서는
그런 부부가 되기를
그런 부모가 되기를
그런 자식이 되기를
축복이 함께하는
사랑하는 딸아…
♧ 빗소리
마음의 풍금을 연다
노래비 흐르는 언덕길 따라
두 손 꼬오옥 잡고 걸어가는
엄마와 아들
음률 타고 들려오는
속삭임
엄마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더라
왜
빗소리가 그냥 좋아서요
어깨에 톡톡 떨어지는
이 소리가 그냥 좋아서요
그렇구나
에야!
너는 커서 시인이 될 거야
♧ 벌랑포구
어머니 큰 울음 알리며
세상에 나오던 곳
외할아버지
함흥에서 청진 바다 나들며
고기 실어 나르던 포구
아들 여섯 딸 셋
물이 좋아 찾아온 새색시 마을
다소곳이 머물던 할머니 자리에
시홍 시종 시열 시영
그리고 순자 아버지와 의사 아들 이모까지 업고 키운
내 어머니 등 마를 날 없으시던
꽃 진 자리
거문여 버렁 사근여*에
만선 휘날리며 귀향한
고,
장 감 찬 구십삼 세 외할아버지
둠벵이 건너면 새각시 물**
생각나
---
* 지형이 새색시 허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 옛 마을 지명.
♧ 석양에 젖이
-자화상
부모는
만삭인 몸으로 등지를 틀었다
그 둥지에 배곯은 돌멩이 얹혀 있다
못 먹어도 배는 불러
쥐방울처럼 작았다던 태둥이
물먹은 백ᄇᆞ름* 채 마르기도 전
거적때기 덮어뒀던 구석진 방에
돌덩이처럼 언 피 녹이며
꼼지락거렸을 상아
너는 모르고 나는 주워들었던 세월,
상록수를 넘기던
지란지교**는 어디로 갔는지
세월은
주야장천 덧없이 지지고 볶다
이제
석양 물결에 젖어보는 시간
때 되면
다시 부모 만날까
---
* 바람벽, 방 안의 벽.
** 유안진의 에세이에서 차용.
*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 (한그루, 2024)에서
*사진 : 수채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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