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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의 시(12)

by 김창집1 2024. 7. 17.

 

 

성읍리 정소암 가는 길

    -고전문학 기행

 

방향을 모르는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여름 냄새 물씬 풍기는

오월의 끝자락

차오르는 숨소리 조율하며

자갈길을 걷는다

 

더덕향을 맡으며 더덕밭을 지나고

외줄 타는 곡예사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호미로 길을 내주는 안내자를 따라

내장으로 들어선다

높낮이가 다른 징검다리 건반을

이리저리 건너가면

새소리 들려온다

 

맑은 하늘에는 무거운 가마를 어깨에 메고

술과 음식을 짊어지고

솥단지 들고 징검다리 건너

화전놀이 즐기러 오던

정의 현감의 일행도 지나간다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영주산 신선들이

불로장생 단약을 달였다는

정소암에서

구름 따라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토종 씨앗 지킴이

    -우영팟과 제주토종 씨앗 지킴이를 만나고

 

 

청둥오리 어린 새끼들 쪼르르 거느리고

헤엄치는 오월의 햇살 가로질러

보리콩을 따러 갔다

삼십 분도 안 되어 체험하는 회원들

콩 줄기 뿌리째 뽑아 들고

너도나도 대나무 그늘 옆으로 모여들었다

보석이라도 감정하듯

햇빛 엑스레이 찍어보며

토실토실 실하고 잘생긴 옥구슬만 찾다가

비실비실 쭉정이 같은 빈 젖꼭지도 남김없이

모가지를 비틀었다

너희들이 토종 씨앗 생명이라 생각하니

고맙고 신기했다

몇 세대를 거치면서 오늘까지 잘도 버티었구나

이웃 밭 넘보지 않고 작고 볼품없어도

파치면 파치대로

귀한 전통과 토종의 맥이 흐르는

생명의 탯줄 이어왔구나

너도나도 돈을 좇아

쉽게 농사짓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위하여

토종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미련을 떨며

고집을 심어 놓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골갱이로 마음을 갈아엎었으리라

이 못난 파치 같은 새끼들을 품으며

그래도 먼 훗날 토종이 우리를 먹여 살려주리란

희망을 심었으리라

무뚝뚝한 돌하르방 미술관 터줏대감도

오늘은 빙색이 웃으며

하트를 보내고 있다

 

 


 

전세비덕 코지

   - 제주문화역사 나들이

 

여기는 서녁펜 바당

제주 서쪽 끗댕이

영락리 전세비덕 코지에 왔다

 

간밤에 ᄀᆞᆺ절이 울다간 흔적이

여기저기 파도에 밀려와

메역귀 잘린 패잔병들이

돌 틈에서 한가로이 나폴거린다

바당은 언제 울었느냐

시치미 뚝 떼고

편두룽 편두룽ᄒᆞ다

 

해가 지고 있다고

인생이 다 끝났다고

절망하는 사람들

전세비덕 코지와 와서

ᄒᆞ룻밤 절과 함께 목놓아 울고 나면

누구나 다시 꿈을 꾸게 되리

 

여기는

제주 서쪽 끗댕이면서

동녘짝 바당을 향하여 나가는 곳

해 뜨는 곳을 향하여

출발하는 곳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