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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8)

by 김창집1 2024. 7. 26.

 

 

당산봉 산자고

 

 

해풍을 가로막는 의연한 당오름은

누군가 넘볼까봐 요새를 만들었나

우뚝 신 자연 전망대 비탈진 오름 자락에

 

누가 피라 했나 봐 곱게 피라 했나 봐

밤마다 길둥근 꽃대 슬몃슬몃 내밀다

벙그는 백합과 산자고 다른 이름 까치무릇

 

봄바람 섬을 덮어 추억을 되새기면

열정의 꽃몸살로 고운 꽃잎 펼치네

아니다 그게 아니다 여섯 갈래 창날이다

 

바닷길 쳐들어온 어느 누구였던가

백제의 해적인가 고려의 삼별초인가

툭하면 밀어닥치는 노략질 왜구인가

 

뾰족한 장날마다 여전사 핏방울인 듯

희붉은 꽃잎 사이 얼룩진 상처 품고

쓸쓸한 당산봉 기슭 말없이 핀 산자고

   

 


 

펜도롱*

 

 

이녁 몸

생각허영

술 하영 먹지 맙서

 

잔소리 무색하게

오늘도 주님 받드네

 

펜도롱,

깍지를 꼈던

내 남편의 오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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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도롱 : ‘시치미 떼고 아무것도 모른 척하고 눈만 멀뚱거리며 있는 꼴의 제주어.

 

 


 

그루밍

 

 

기계와 말하면서

헛도는 거짓의 끈

자꾸만 그쪽으로 끌려가게 되네요

본색이 너무 달콤해

짐작조차 못해요

 

더 빠른 속도로 알고리즘 통해 얻은

참보다 거짓 앞에

솔직하게 열리는 귀

온전히 감춘 얼굴을 찾아내지 못하죠

 

죽었다 살아났다 그렇게 반복하다

절박한 청춘 하나

세상 사슬에 걸리네

 

영혼을

갉아서 먹는

온라인 속 그루밍

 

 


 

조왕할망*

 

 

아들이 군대 간다고 할머니는 우셨다

남들도 다 가는데 왜 목이 메었을까

의문사 생각나서인지

아이고만 내쉬었다

 

어머니도 힘들 땐 조왕할망 찾았지

새벽마다

정한수 솥뚜껑에 올려놓고

가파른 희망을 잡고

할망 할망 조왕할망

 

시대는 바뀌어도 ᄆᆞ음은 그대로네

그 어미가 불렀듯 조왕할망 부른다

내 아들

잘 지켜 줍서

할망 할망 조왕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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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왕할망 : ‘부엌이나 부엌과 연관된 온갖 일을 관장한다는 신의 제주어.

 

 

   *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동학시인선 122,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