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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14)

by 김창집1 2024. 7. 28.

 

 

서우봉 휘파람새

 

 

바람 드센 섬에서는 파도에도 멍이 드나

가파르게 잘려나간 몬주기알 벼랑 아래

 

근 백 년 멍자국처럼

시퍼렇게 이는 물빛

 

머리 푼 회리바람 삼각파도 몰고 오면

메밀꽃 핀 물마루에 절을 하는 북촌 바다

대 끊긴 제삿날 아침 파랑경보가 내리고

 

오래전 탄흔單痕 같은 진지동굴 구멍마다

비명에 간 휘파람새 울음소리 묻은 뜻은

 

여태도 참회의 굿판

열지 못한 까닭이다

 

 


 

쥐불놀이

 

 

1.

  거문오름 검은 숲에 장작불이 활활 탄다

 

  짐승 같은 바람 소리 살갗을 부풀리고 걸어선 갈 수 없는 굼부리 능선 따라 죽창을 불태우며 한껏 달뜬 불티들이 죄 없는 영혼인 양 별로 뜬 초승 하늘, 모반의 칼날 하나 싸느랗게 걸릴 동안 연착된 봄꽃 서넛 용암굴로 숨어든다, 꾹 다문 입술마다 피어나는 푸른 살기 팽팽하게 일어서는 모들 뜬 눈빛들이 등 둥 등 북소리로 가슴골 울려오면 흙빛으로 굳은 낮엔 찬 이슬이 매달리고 비나리 비나리치듯 무릎이 꺾이는 밤

 

  저 깊은 어둠의 장막 누가 와서 걷을까

 

2.

  시르죽은 잿불마저 자지러진 액막이굿판

 

  숨소리만 설설 끓는 무너진 돌담 사이 밤 도운 불꽃들이 혓바닥을 날름대고 대가 튀듯 콩을 볶듯 작두 탄 총소리가 바리데기 뜀박질로 자정을 밀고 갈 때, 삼촌 원죄까지 대신 업은 애기업개 산철쭉 붉은 꽃술에 하혈 왈칵 쏟아낸다. 시퍼런 바다에 갇혀 갈기 세운 파도의 섬 붉가시 종가시가 파랑주의보 발령하고 천남성 핏빛 열매 독기를 내뿜는데, 박수도 신명도 없는 허튼 굿판 한가운데 낙엽만 쌓여가는 곶자왈 한 굽이를 애면글면 에돌아 온 절뚝발이 그 시월을

 

  움펑눈 돌하르방도 찌푸린 채 맞고 있다

 

 


 

소드방놀이*

 

 

  노을의 불티들이 흩날리는 제주목 관아

  가마솥 뚜껑 하나 동헌 뜰에 놓여지고

  걸궁패 굿장단에 맞춰 북소리가 울린다

 

  떼까마귀 잡설 같은 허튼소리 들어나 볼까

 

  죽이 익을라몬 아직도 멀었고 그냥 내쳐 기다리기도 하 심심한께, 빌어묵을, 심심풀이 삼아 소드방놀이나 한판 벌여볼까나? 요놈의 놀이 내력 들어볼라치면 오리汚吏는 쓸어내도 있고 일소해도 있어. 몰아내도 있고 추방해도 있어. 뿌리 뽑아도 있고 근절해도 있어. , 그러니 어쩔거나? 빌어묵을, 이주 꼬르륵 증발시켜 버려야제. 끓는 가마솥에 달궁달궁 삶아내어 아주 씨알머리를 죽여야제.

 

  그 생각 장히 좋으나

  허허, 누가 누굴 죽일꼬?

 

  누가 누굴 벌줄거나? 죄 없는 놈 어디 있다고?

 

  내 죄 대신 업은 놈을 어찌 그리 삶아 죽여? 넨장 젠장 별 수 없네. 진퇴양난에 고육지책이라 아궁이에 불을 빼고 식은 불이나 때야것네. 시늉불이나 넣어야것어. 에라, 그것도 번거롭네. 소드방 하나 달랑 놓고 올라가라 해라. 엄살한 번 되게 피고 죽는 시늉이나 하라 하것다. 허허, 요렇게 솥 찜질은 시늉만 남고 탐관오리 벌주는 일도 껍질만 남고 상징만 남아 허구한 날 아무 말썽 없이 전해 내려오는 것

 

  총 쏘고 뭍으로 내뺀 귀신들

  벌 받으며 낄낄대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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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드방솥뚜껑을 이르는 제주도 말. 끓는 가마솥에 죄인을 삶아 죽이는 부형(釜刑)’을 일컫지만, 실제로는 아궁이에 불을 때는 척하면 죄인이 죽는 시늉을 해 보이거나, 심지어는 솥뚜껑 하나 달랑 갖다 놓고 거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음 (현기영의 동명소설에서 내용 일부 참조).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고요아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