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 한 장 – 홍해리
“아저씨, 미아5동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요?”
“미아5동으로 가야지요!”
머리 허연 노파가 길을 묻고
내가 답한다
우이동 솔밭공원 옆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쩔쩔매고 있었다
아내도 길을 못 찾고 이리저리 헤매다 떠났다
몇 해 전 일이었다
지금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아직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지
하늘을 망연히 올려다보니
어느새 저녁 하늘이 나즈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는
부디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일이 없기를,
인생길이 막막한 미로라 하지만
발길 가는 대로 가다 보면 끝이 있는 것인가
♧ 은하수를 보며 - 방순미
여자를 보면 우주가 보인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었고
아내였으며 딸이자
누군가의 손녀다
별,
하나가 우주이듯
어머니가 우주고
손녀가 별이다
땅 별에 사는 여자는 여전히
슬픈 은하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 처녀치마 – 정지원
높은 산 습한 자리
보라로 피우는 꽃
긴 치마 다소곳이
오지랖 드리우고
긴긴 날 그리워하다
구름 지듯 지느니
♧ 아하, 너로구나 수국이 – 이수미
공작새가 꼬리를 힘껏 펼치고
아름다운 무늬로 암컷을 유혹하듯
수국은 눈에 띄지 않는 왜소한 몸을
한껏 부풀려 몽실몽실한 얼굴을 만든 뒤
벌과 나비를 부르기 시작한다
벌 한 마리 날아와 수국의 자태를 보고
슬그머니 내려와 앉고
나비 한 마리 날아와
수국의 화려한 치장에 놀라 날개를 접는다
수국을 보니 네가 생각난다
*월간 『우리詩』 7월호(통권 43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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