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림모살길 따라
-제주문화역사 나들이
평대리에 가면
달마를 닮은 시름이 있다
그 ᄆᆞ을 해설사이면서
유기농 당근 농시를 짓는 농부이면서
당근주스를 판매하는 카페 사장님이시다
텁수룩한 수염과 너털웃음으로
불림모살길을 걸으며
옛말 들려주는
삼거리 폭낭 달마이시다
두린 아기들만 보면 쏨지돈 쥐어주던
좀좀하루방 이야기
폭당 아래서 빈둥거리는 어룬이나
놀고 있는 두린 아기를 보면
욕하고 다울리던 혹혹 하루방 이야기
욕먹던 비석 이야기
가심 속에 ᄌᆞᆷ자던 숨은 이야기
먼먼 슬픈 사연 속으로 데려다준다
불림모살길 따라
당근길 따라
냉이꽃 같은 이야기 속으로
데려다 준다
♧ 거미줄
만선을 기원하며
공중에 그물을 던졌다
나무와 억새 사이 작은 가지에
긴 빨랫줄 하나 걸어 놓고
가을을 널었다
나무에서 가을 냄새 물씬 피어오를 때
빨갛게 물들고 싶었다
바람난 작은 벌레들
풍덩풍덩
가을 속에 빠져버 렸다
모빌 같은 별자리 무덤 하나
공중에 매달아 놓았다
♧ 나도수정초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누구를 위한 촛불을 켜 놓았을까
개미와 벌레들이 서성이는
그늘진 그곳에
먼 길을 달려온 동방박사같이
발걸음 멈추게 한다
켜켜이 쌓인 낙엽 뚫고
고개 내민 새 생명
고요를 쪼아 먹는 새소리를 머리에 이고
세상을 향해
맨몸으로
작은 촛불 하나 켜고 있다
♧ 끝물에 핀 호박꽃
허겁지겁 녹슨 철조망 사이를 기어올랐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나서야
칠삭둥이처럼 푸르딩딩한 젖꼭지를 매달아
지나가는 바람도 안쓰러워
주춤거린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뿐
*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 (한그루, 2023)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7) (0) | 2024.07.31 |
---|---|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8) (0) | 2024.07.30 |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14) (0) | 2024.07.28 |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6) (0) | 2024.07.27 |
김신자 시조집 '봄비에 썼던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8) (0) | 2024.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