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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3)

by 김창집1 2024. 8. 3.

 

 

나눔 - 김순선

 

 

아직도 저곳을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다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 붙들고

마트와 편의점에 밀려 이름도 잊혀져가는 슈퍼

머리가 허연 파마머리 할머니가

덜컹거리는 문을 밀고 나온다

휘이훠이 손을 저으며

인근에 있던 수십 마리 비둘기들이 할머니 곁으로 몰려온다

지우뚱 지우뚱

쭈뼛쭈뼛

졸졸

투명 비닐봉지에 든 하안 쌀을 골고루 뿌려준다

밥은 먹언 다념시냐?

자식에게 말을 건네듯

비둘기의 아침이 걱정되어

쌀쌀한 이른 아침

마수도 하기 전에

비둘기 밥을 먼저 챙긴다

보릿고개를 건너온 할머니가

명절이나 제삿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곤밥을 건넨다

 

 


 

다랑쉬 비가(悲歌) - 김승립

 

 

달의 숨소리도 잠가야 했다

 

눈발 쏟아지고 한 줌 온기도 눈밭에 숨겨야 했다

 

따끈한 밥은커녕 날것의 지슬조차

 

소리 없이 씹어 삼켜야 했다

 

그런데도 두억시니 눈빛의 살인자들

 

애먼 사람들 이유 없이 그냥 쏴 죽이는 것도 모자라

 

아예 이 좁은 궤에 불을 피워 지다리 사냥을 하는구나

 

제주사람은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

 

짐승이거나 한 줌 티끌만도 못한 것

 

이곳에서는 휘영청 달빛도 캄캄한 그늘 드리우고

 

숨을 멈춰야만 한다

 

아직도 혼살이꽃 한 꼭지 얻지 못하고

 

차디찬 냉갈로 떠도는 혼백들

 

 


 

쉰다리 김항신

 

 

밥이 쉬어사 쉰다리가 뒈주기

어머니가 골아주는

 

어머니 손맛 ᄎᆞᆽ앙

아멩 헤봐도 그 맛이 안나

 

어머니 쿰은 쉰다리만 ᄒᆞᆫ게

어디 심광

 

펭생가도 어머니 쉰다리

멩글아 보기가, ᄎᆞᆽ아 볼 수 엇인

시절 인연

 

똑히 제주어만큼이나 에려워

 

 


 

광치기 문경수

 

 

숨비소리 정겨운 초여름

잿빛 돌고래 바다 위에 모로 눕고

풀과 꽃과 나무는 몸을 치댄다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음악 듣고 좋은 차 마시고

하늘은 좋이도 푸르니

비행기는 새떼처럼 시끄럽구나

세상 나쁜 것 하나 없구나

돗자리에 그려진 꽃 그리고

밀려오는 에메랄드 파도에 손을 건네는

 

지금은 12월 초입

이대로라면

 

우리 사는 세상이라는 것은

약동하는 생명들의 유례없는 절망과 비명

 

고매한 풍류객들의

휘파람소리 노랫소리에 뒤섞여

절멸해 버릴 것이다

 

 

                                *계간 제주작가여름호(통권8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