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의 문장
수직의 은유로 빛을 내는 자작나무 숲
펼쳐놓은 페이지마다 어찌 뜻을 헤아릴까
바람길 파고들어도 해독되지 않는다
흰 뼈 갈고 갈아 써 내려간 고전의 문장
천 개의 햇살 타고 내게 닿은 당부 같아
겹겹이 퇴고의 흔적 가만 손을 대 본다
♧ 사막의 별
온몸이 다트 되어 내리꽂던 별빛들
허르혁*에 체한 듯 아직도 삭지 않아
위벽을 타고 오른다 쓴물 같은 풀 냄새
---
*몽골의 전통 육류 찜 요리.
♧ 자기 앞의 생
사막의 모래 능선
정상을
감히 넘봐
산등성
허리쯤에서
단숨에 미끄러지는
고배를
먼저 마신다
모호해진 생의 좌표
♧ 당신이 걸어온 길
산 절벽 쓸쓸함에 길은 높고 허공 깊다
청무밭 짙푸름이 때로는 성난 바다
섬에서 섬의 서편으로 자꾸만 떠밀린다
금잔옥대 스민 묵향 자욱이 번지는
직립의 날들 앞에 오롯이 지샌 밤은
탱자 울 배긴 등허리 차마 삭혀 들었을까
등고선 멀리 돌아 다시 와 만나는
바윗돌에 새긴 품성 편히 쉬어가시라
유배지 세한歲寒의 날들, 발걸음이 온유하다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가히, 2024)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혜향문학' 2024 상반기호의 시(3) (0) | 2024.08.04 |
---|---|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3) (1) | 2024.08.03 |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5) (0) | 2024.08.01 |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7) (0) | 2024.07.31 |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8) (0) | 2024.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