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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혜향문학' 2024 상반기호의 시(3)

by 김창집1 2024. 8. 4.

 

 

[초대시]

 

 

꽃의 숨결 성희

 

 

산에서 안고 온

산국 한 다발

거실 창가에 앉혀놓고

볼 때마다 미안하다

 

줄 게 물밖에 없어

물만 갈아주는데

낯가림도 않고

유리잔 속발 담근 꽃

새소리 바람소리 들려주지 않아도

달뜬 숨 몰아쉬며 파르르르

꽃이파리 흔들며 향기 깝친다

 

몇 날 며칠 노랑 꽃등 밝히며

풀었다 머금는 넌

작은 몸 다 풀어

온 생, 향기로 몰아간다

 

 


 

금산사 정하해

 

 

너를 찾으러 천리를 오니 눈물이 난다

영영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봐

 

구척장신인 미륵존불 앞에서

절 하나에 너를, 절 두 번에 또 너를

 

우리가 헤어진 것도 없으니 달리 찾을 방법도 없지만

 

법당 앞을 지키는

꽃무릇들과

 

오층 석탑에 올라서니 해가 기울고 있다

용화세계였다

 

 


 

능소화, 할머니 - 천병석

   -마이산에 압도되다!

 

 

그래,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왕복 1만 걸음을 넘는 흙길

지인의 얼마 안 걸린다는 말을 흘려들어 믿고는

주차해 둔 곳에서 걸어, 걸어 올라가도 닿지를 않는 금당사와

마이산의 그 웅장한 형세

돌이켜 보면 초입에 있던 그 많은

많은 사람들이 쌓아 둔 낮은 돌탑들이

굳이 하늘에서 복 따위 내려주지 않아도

내가 내게 새긴 다짐이었음을

 

그래, 사무실에 찌든 내 발걸음이

미리 알았더라면 가보지 못했을 먼 길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있으려니 하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로 갈 수 있었던

덕분에 이마에 부딪는 바람과 수백 년

줄지어 견디고 선 나무들도 만져볼 수 있었네

 

수억만 년 할아버지 적부터 거기 버티고 선

수억만 톤의 암벽을 타고

기어이 하늘로 오르려는

이갑용 처사의 피와 영혼뿐 아니라

참배객들의 시리고 아픈 모든 염원들까지 수액인양 빨아들여

이 조선 천지에 처음 드러낸 그 수억만 톤 암벽

수천만 길 벼랑을 지금도, 부여잡고

기어이 화석이 되어버린 그 능소화!

정안수 하늘에 바쳐

빌고 또 비시던 우리들의 할머니

그 주름진 손등에 파르나니 피어오른 푸른 영혼의

불길 같은 이내도

그리 먼 줄 미리 알았더라면 내 생전

눈에 넣어보진 못했으리라

 

거기 있겠거니

흘려들어 믿지 않고는 가보지 못할 길이여!

하늘 높은 줄을 다시 새기는 먼 길이여!

 

 

                          *혜향문학2024 상반기호(통권 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