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 꽃의 숨결 – 성희
산에서 안고 온
산국 한 다발
거실 창가에 앉혀놓고
볼 때마다 미안하다
줄 게 물밖에 없어
물만 갈아주는데
낯가림도 않고
유리잔 속발 담근 꽃
새소리 바람소리 들려주지 않아도
달뜬 숨 몰아쉬며 파르르르
꽃이파리 흔들며 향기 깝친다
몇 날 며칠 노랑 꽃등 밝히며
풀었다 머금는 넌
작은 몸 다 풀어
온 생, 향기로 몰아간다
♧ 금산사 – 정하해
너를 찾으러 천리를 오니 눈물이 난다
영영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봐
구척장신인 미륵존불 앞에서
절 하나에 너를, 절 두 번에 또 너를
우리가 헤어진 것도 없으니 달리 찾을 방법도 없지만
법당 앞을 지키는
꽃무릇들과
오층 석탑에 올라서니 해가 기울고 있다
용화세계였다
♧ 능소화, 할머니 - 천병석
-마이산에 압도되다!
그래,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왕복 1만 걸음을 넘는 흙길
지인의 얼마 안 걸린다는 말을 흘려들어 믿고는
주차해 둔 곳에서 걸어, 걸어 올라가도 닿지를 않는 금당사와
마이산의 그 웅장한 형세
돌이켜 보면 초입에 있던 그 많은
많은 사람들이 쌓아 둔 낮은 돌탑들이
굳이 하늘에서 복 따위 내려주지 않아도
내가 내게 새긴 다짐이었음을
그래, 사무실에 찌든 내 발걸음이
미리 알았더라면 가보지 못했을 먼 길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있으려니 하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로 갈 수 있었던
덕분에 이마에 부딪는 바람과 수백 년
줄지어 견디고 선 나무들도 만져볼 수 있었네
수억만 년 할아버지 적부터 거기 버티고 선
수억만 톤의 암벽을 타고
기어이 하늘로 오르려는
이갑용 처사의 피와 영혼뿐 아니라
참배객들의 시리고 아픈 모든 염원들까지 수액인양 빨아들여
이 조선 천지에 처음 드러낸 그 수억만 톤 암벽
수천만 길 벼랑을 지금도, 부여잡고
기어이 화석이 되어버린 그 능소화!
정안수 하늘에 바쳐
빌고 또 비시던 우리들의 할머니
그 주름진 손등에 파르나니 피어오른 푸른 영혼의
불길 같은 이내도
그리 먼 줄 미리 알았더라면 내 생전
눈에 넣어보진 못했으리라
거기 있겠거니
흘려들어 믿지 않고는 가보지 못할 길이여!
하늘 높은 줄을 다시 새기는 먼 길이여!
*『혜향문학』 2024 상반기호(통권 2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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