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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의 시(3)

by 김창집1 2024. 8. 14.

 

 

삶의 한 방식

 

 

정직만이 삶의 방식 그리 쉽지 않았으리

 

한 소절 마디마디 결구를 다지며

 

텅 빈 속 채우려 했던 엇나가는 곁가지

 

수런수런 댓잎 소리 바람의 말 흘리나

 

반짝이는 그림자 둘 곳 없는 남루에

 

한뎃잠 깊이 내리니 뿌리마저 허공이네

 

 


 

너의 이해

 

 

돗바늘 탱자 가시 한순간 찔린 손등

 

혹독히 파고들어 농이 차 뭉크러져도

 

그 누가 알아차릴까 이해했던 단 하나

 

덧난 가지 싹둑 자른 냉정한 오후도

 

가시는 눈물 같고 어쩌면 온순해져

 

서로가 맞닿은 자리 비켜 앉던 그 잠시

 

새순마저 초록으로 땡볕 여름 견디며

 

저를 눌러 넓힌 자리 그늘이 되는데

 

난 그저 지나쳐 온 날, 불쑥 솟는 가시였네

 

 


 

용서

 

 

그 누가 먼저 거두는 가을볕 수확인가

 

남천나무 붉은 잎새 거미줄에 걸려든

 

흰나비 차마 꽃인 줄, 오롯이 박제된 사랑

 

 


 

양피지 노트

 

 

죽음을 쌓아 올린 트럭 짐칸 밑으로

치렁치렁 매달린 날짐승 울음소리

그림자 사라질 때까지

뒤따르던 그 여름

 

닳도록 치대어 거듭나는 이력마다

한 글자도 못 쓰고

펼쳐둔 양피지 노트

구르는 돌멩이 같은, 문장도 사치여서

 

별을 향한 유목의 날

수없이 베껴 쓰며

비루해진 발자국 고이 품는 게르의 밤

양떼들 숨을 고른다

백야가 또 온다

 

 


 

고흐의 슬픔

 

 

별빛이 밀려드는 방

온기에 젖은 마음

 

천국에서 왔을까요

 

은인처럼

핏줄처럼

 

무릎을

펴게 하시는

 

시리도록

붉은 종교

 

 

                  *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 줄 것이다(가히, 2024)에서

                                            * 사진 : 우리 호수의 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