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한 방식
정직만이 삶의 방식 그리 쉽지 않았으리
한 소절 마디마디 결구를 다지며
텅 빈 속 채우려 했던 엇나가는 곁가지
수런수런 댓잎 소리 바람의 말 흘리나
반짝이는 그림자 둘 곳 없는 남루에
한뎃잠 깊이 내리니 뿌리마저 허공이네
♧ 너의 이해
돗바늘 탱자 가시 한순간 찔린 손등
혹독히 파고들어 농이 차 뭉크러져도
그 누가 알아차릴까 이해했던 단 하나
덧난 가지 싹둑 자른 냉정한 오후도
가시는 눈물 같고 어쩌면 온순해져
서로가 맞닿은 자리 비켜 앉던 그 잠시
새순마저 초록으로 땡볕 여름 견디며
저를 눌러 넓힌 자리 그늘이 되는데
난 그저 지나쳐 온 날, 불쑥 솟는 가시였네
♧ 용서
그 누가 먼저 거두는 가을볕 수확인가
남천나무 붉은 잎새 거미줄에 걸려든
흰나비 차마 꽃인 줄, 오롯이 박제된 사랑
♧ 양피지 노트
죽음을 쌓아 올린 트럭 짐칸 밑으로
치렁치렁 매달린 날짐승 울음소리
그림자 사라질 때까지
뒤따르던 그 여름
닳도록 치대어 거듭나는 이력마다
한 글자도 못 쓰고
펼쳐둔 양피지 노트
구르는 돌멩이 같은, 문장도 사치여서
별을 향한 유목의 날
수없이 베껴 쓰며
비루해진 발자국 고이 품는 게르의 밤
양떼들 숨을 고른다
백야가 또 온다
♧ 고흐의 슬픔
별빛이 밀려드는 방
온기에 젖은 마음
천국에서 왔을까요
은인처럼
핏줄처럼
무릎을
펴게 하시는
시리도록
붉은 종교
*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 줄 것이다』 (가히, 2024)에서
* 사진 : 우리 호수의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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