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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4)

by 김창집1 2024. 8. 16.

 

 

신축년 5월에 - 문무병

 

 

시보다 더 좋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니

유치한 생각들에 눈이 돋아

중학교 3학년 정도는 성숙하고 뜨거운

새롭게 쓰려도 시가 되지 않는

익어 없어진 수첩 찾으며

진짜 사랑편지

무심천 물소리 같은

사라봉 산책길에 주운 생각들

소매 속에 담고 와

오래된 미래를 만드는

꿈속의 하루를 샘에게 보냅니다.

 

 


 

붉은귀거북 - 서안나

 

 

작년에 죽은 꽃이

귀신과 놀던 꽃이

귀만 붉은

붉은귀거북을 등에 지고 왔다

 

몸을 죽여 등껍질을 얻은

영혼은 어디쯤에서 분홍으로 돌아섰나

자 문살을 열면

결명주사로 입술 붉게 칠하고

뒤돌아 앉는 마음

 

별을 쓸고 온 어머니가

내일은 손님이 유서 깊은 연못을

지고 오겠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마음은 귀가 붉어 종소리가 난다

 

내 귀에

작년에 묻은 흰 구근이

편지봉지처럼 바스락거린다

얼굴 부서진 사람이 고개를 내민다

 

돌 속에서 돌을 꺼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구름을 알려주세요 - 양동림

 

 

627일 소풍 가기 딱 좋은 날이라고 했다

아침이 되었다고 하는데 어두웠고

새들이 날아다닌다고 하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시원한 바람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하늘이 파란가요?

파랗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혹시 하늘에 구름이 있나요?

구름을 알려주세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구름이 궁금하네요

하안 구름은 포근한 솜털 같다고 하더군요

먹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고 하는데

구름은 어떻게 생겼나요?

궁금한 나에게 도우미 선생님이

솜사탕을 주더군요

솜털구름이라 했어요

달콤했어요

손으로 조금씩 뜯어먹었더니

손가락이 끈적끈적 했어요

 

구름을 알려 주제요

딱딱한가요?

말랑말랑한가요?

하늘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어떤지 알려주세요

 

당신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하늘에 구름이 떠 있네요

뭉게뭉게 피어오른 저 구름은

제가 어릴 때 만지작거리던

어머니 젖가슴 닮았네요

만지면 포근해지는 그 느낌

당신도 느껴지나요?

 

 


 

동백의 꿈 오광석

 

 

이른 봄날

43평화공원 각명비를 보고 돌아가는데

동백꽃이 지고 있다

 

아직은 날카로운 겨울 칼날

댕강댕강 잘려 떨어지는 꽃들

 

산을 닮은 꽃술

섬을 닮은 꽃잎

부서지지 않고 떨어지는 꽃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심 너머로 날아갔으면 했다

 

남해를 넘어 날아가다가

여수 순천 바다 앞에 떠다녔으면

금남로 망월동에 불그스레 불렸으면

지리산 둘레 길마다 꽃길로 깔렸으면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올라

금강산 자락에 꽃잎이 날렸으면

산에서 피어오른 구름을 타고

태평양 너머 미얀마에도

꽃비가 내렸으면 했다

 

꽃이 지고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날

여문 열매 속에는

씨앗들이 자라는 꿈을 꾸겠지

자라난 씨앗들이 발아하는 날

튼튼한 나무로 커가는 꿈을 꾸겠지

나무로 자란 동백이 꽃을 피우는 날

섬에 가득한 동백꽃들이

산에서 부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날

 

동백꽃들로 넘치는 세상

꿈꾸며 꽃길 걷는다

 

 

                          *계간 제주작가여름호(통권8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