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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의 시(6)

by 김창집1 2024. 8. 13.

 

 

족쇄를 풀어춰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저 문만 나서면

 

푸른 날 성긴 시간 태초의 그 길 따라

날마다 귀향을 꿈꾸는 슬픈 눈의 목각 기린

 

창 너머 초록 잎새 마구마구 손 흔들면

아프리카 드넓은 저 질주의 본능으로

 

소나기 맞으러 간다,

겅중겅중 목 빼 들고

 

캄캄한 밤하늘에 별빛 총총 수놓으면

코뿔소 작은 샘터에 무리 지며 마중 오겠지

 

마음은 이미 달리고 있어

족쇄를 풀어줘

 

 


 

팔월의 시

 

 

생명이 있는 것들은 독기 어린 얼굴로

팔월의 들판 아래 만장일치 모여들어

비장한 다짐을 한다

씨알 한 톨 남기리

 

수은주 빨간 눈금 내려갈 줄 모르고

앞 다투며 달려오는 어긋난 시간 속에

볕에다 내다 걸어도 파랗게 익지 못하는

 

뜨거운 바닥을 딛고라도 건너야지

삼키기도 내뱉기도 속이 빈 강정 같은

하나둘 돌려세우다

설익은 시어 몇 줄

   

 


 

고지서

 

 

과속으로 달려온 출구 없는 길 위에

 

변명 한번 못 한 채 받아든 과태료

 

이제 좀 쉬어가라고, 내게 준 옐로카드

 

 


 

겨울엔

 

 

겨울엔 수련도

 

묵언수행 중이다

 

텅 빈

연못가에 바람의 지느러미

 

하늘도 가끔 내려와

 

물의 온도 재고 간다

 

 


 

폭설

 

 

얼마만의 일이랴,

꿈꾸던 이 하안 세상

새소리도 숨죽인 정적만 감도는 숲

눈 위에 노루 발자국 무릎마저 포갠다

 

섬과 섬 구분 없이, 바람마저 손 놓고

고요가 고요 부르며 하얗게 펼쳐놓은

태초의 길 앞에 서면 누구나 평온하다

 

탄성으로 질러대는 눈부신 오늘이여

층층 쌓인 삶의 무게 그마저 내려놓고

나만의 길 위에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장영춘 시집 달그락, (한그루, 2024)에서

                                  *점점 줄고 있는 남북극의 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