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펭귄
38도 땡볕 아래 어미 한번 아비 한 번
볼더스 비치 모래밭에 숙명이듯 알을 품는
어미의 붉은 목젖이 무릎을 꿇게 한다
울 엄마도 한여름에 나를 저리 품었었지
숨넘어가는 산통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세상의 첫 울음소리, 그 소리 때문이었지
♧ 구피*의 하루
온종일 어항 속
태평양을 건너듯
출구 없는 레일 위를 돌리고 돌려도
또다시 제자리걸음 오늘이 갇혀 있다
한때는 내 어머니도 종종걸음치셨지
한여름 용천수에 발 한번 담글 새 없이
움푹 팬 발자국들은 어머니의 길이다
저들도 속수무책,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저출산 막대그래프 눈금을 채워가듯
새끼들 한 달이 멀다, 수 싸움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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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 : 열대어.
♧ 야학의 꿈
죽지 안허난 살았주
아이고 목숨도 질경
우리 어멍 학교 보내줍네까
아덜덜만 시켰주
어쩌다 밤 야학 강 오민
막 때리곡 협데다*
전생에 소로 못 나면
여자로 태어난다던
어머니 받침 틀린
글자들이 흘림체로 흘려
못다 쓴 소설책 종장
채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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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집 『여성의 기억』 중 수산리 양○○(98세) 님의 구술 일부.
♧ 시대변천사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키웠었지
앞치마 두르고 설거지하는 아들을 보며
돌아와 한숨 못 잤다고
푸념하던 옆집 엄마
그런 시절 있었지, 가부장적 시대론
출세를 내세우며 책상 위에 앉혀 놓고
맹목적 내리사랑으로
등 떠밀던 어머니
강산이 몇 번째 바뀌더니 너도나도
퇴근하면 달려가 집안일 분담해야 하는
진즉에 그랬어야 했어,
공평한 세상이지
♧ 당신堂神을 찾던 당신
-해안동, 동당
누구의 손길이었나 근원을 찾던 발길
미끄덩 넘어지며 무심의 단죄를 받듯
풀더미 허리 헤치며 길 없는 길을 간다
아침 이슬 밟으며 당신堂神을 찾던 당신
지성으로 빌었던 간절함도 녹이 슬어
다 식은 제단 둘레에 표지석 하나 없는
당신堂神은 거기 있는데 당신은 거기 없고
덩그러니 하늘로 손 내밀던 팽나무 아래
해안동 하르방당에 상사화꽃 피었다
* 장영춘 시집 『달그락, 봄』 (한그루,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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