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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3)와 '흰진범'

by 김창집1 2024. 9. 21.

 

 

물방울 시 김선순

 

 

언제 이런 나이가 되었나

더금더금 나도 몰랐다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키우고

 

보이지 않게 자란 마음은

물방울만큼 새겨진 상처에

기대어 살아가는 법을 일러 주었다

 

무거워 헐떡이던 어제가

더 더 찬란을 꿈꾸는 내일이

선물처럼 펼쳐지는 오늘 앞에 침묵이다

 

달이 비치는 물방울

어둠으로 빛나는 찰나

어제가 되어가는 오늘을 눈부시게

내일이 찬란하게 오늘을 껴안는다

 

 


 

자유에 대해 김세형

 

 

이 전쟁은 우와 좌의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인간과 짐승과의 전쟁이다.

개인과 떼와의 전쟁이다.

당신은 고독한

그러나 자유한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떼로부터 탈출하라.

떼쓰는 떼로부터 벗어나 고독한 자신과 마주하라.

잃어버린 자신과 함께하라.

거기에 자유가 있나니-

거기에 인간이 있나니-

 

 


 

가을() - 김은옥

 

 

새털구름 따라 마음이 흘러간다

마음 떠나보낸 눈동자 조리개 속 창문 너머로

금붕어 떼 물결치며 노을이 가득 밀려오고 있다

 

창을 닫지 못한 빈 몸이 자리에 눕는다

삭막해진 내 숨결들이

뾰족한 잠을 밤새 둥글게 다듬고 있다

 

창밖이 수선스럽다

아파트 창문들이 하나둘 피돌기를 하는 중이다

사방 가득 늦둥이들이 울긋불긋 먹음직스럽다

붉은 것들을 무진장 베어 먹는다

육즙을 뚝뚝 흘리며 차오르는 피

가을 살점 비린내 아침 하늘에 가득하다

 

 


 

붉은 가을날에 김정서

 

 

그리움이 나리는데

온 산 가득 나리는데

 

나는 누른 냄새를 맡으며 걸었네

가을의 음성을 들으며 하염없이 걸었네

 

저녁 해 붉은 숨이 산등성이 비껴갈 때

모퉁이 단풍잎도 붉게붉게 나리는데

 

어둠이 젖어 올라 경계를 지웠을 때

열엿새 깊은 달도 단풍들 듯 붉으네

 

 


 

대설주의보 오명현

 

 

아침까지도 하늘은 찌뿌둥하기만 하고

가는 눈발조차 없는 것이

대설주의보는 완전히 빗나갔다

 

길에는 밤새 구청 공무원들이

염화칼슘을 무더기무더기 쏟아 놓았다

 

우리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염화칼슘을 쓸어 담는다

옆집 김 씨는

눈인 줄 알고 밟아 대는 길고양이들의 발바닥이 얼마나 쓰리겠냐며 쓸어 담고

아내는

나중에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쓸어 담고

나는

승용차 하부 철판에 녹이 슬어 차가 남아나겠느냐며

쓸어 담는다

 

 

                                         *월간 우리9월호(통권 제43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