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
1.
그때는 몰랐지만 오늘은
알았다
고사리 찾던 노루손이길
금실 좋은
오〜 나기철 시인
머무는 곳
2.
평화공원 오가다
마주치는 길목
이곳에 오면
양로원이 있고 그 앞에
집과
차 한 대
농기구와 창가에 머무는
햇살과 바람 한 점이 주는
정오의 시간
3년째 기웃대다
커브를 돌리던
이곳엔
노루손이 따다 남은
벳고사리
그 쫄깃함에 젖이
♧ 소리
궁금하다
어떤 울음으로 시를 지을까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수컷들은 두 날개 비비며 암컷
부른다는데
얘들은 잠시 땅속 머물다 풀숲에
나와 날갯죽지 문장을 쓴다는데
소리들 베껴 쓴다
순서는 바뀌거나 말거나
살기 위해 먹기 위해 뛰기 위해
찢어지게 걸러내며
여름 나고 또 다른 봄 보내고
나면
궁금하던 여치 소리 다시 그때
쯤이면 날까
내 詩에 울음 터질 날 있으려니
그렇게
♧ 동백 아씨
긴 겨울
침잠에서 깨어 기지개 켭니다
그 화려함이 생이고
청춘이고
삶이었던 동백 그늘
그대와
느껴본 세월은 아니 있으나
진정
잊을 수 없는 날의 기억들
한 생을 돌아보며
곤을동 길 걷습니다
흔적만 남은 당신의
안거리 밖거리 텃밭이던
자리 그 자리에서
동백 아씨
툭툭 떨군 눈물 자국
아리게
아리게 바라보다
아름 따라 발길 걸어봅니다
♧ 외로운 여정 1
어느 슬픈 날에
곤을동* 걷고 있었지
티브이 속
생생한 뉴스 떠날 줄 모를 때
그녀의 슬픔도 알게 됐어
이봐요 어디 있을까요
여기도 없나 봐요
누가 본 사람 없나요
환청으로 들려오던 저 곡두
이역만리
돈 따라 나선 가장의 최후最後가
메아리 되어
---
* 제주4․3유적지.
♧ 아름다운 동행
- 자연과 인간의 합일*
양전형 선생님
잘 쓰인 시를 읽고 나면 한적한 들길을 걸을 때, 돌담 옆에 피어난 민들레나 봄의 들꽃을 보는 듯한 기쁨을 느낍니다. 지난해, 어디선가 ‘오라동 메꽃 9’를 읽고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도 같은 기쁨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토담집 울타리나 마을 높직한 곳에 앉아, 마을을 굽어보는 시인의 따뜻함, 시인의 애정,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의 리리시즘으로 하여금 존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친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첫 행과 끝 행에 ‘따따따’를 장치하여 의미 구조하기보다는 음성구조의 멋과 가락을 주입시켜 멋들어지게 뽑힌 시를 읽으며, 장황하고 교훈적(?)인 말장난으로 판을 깨버리는, 그래서 쉽게 식상해버리는 시들이 많은 요즈음 대화하듯, 구술하듯 써 내려가면서도 행간에 숨어 있으며 눈물까지도 비치게 하는 뜨거운 생명성, 참 좋게 읽었습니다. 또한, 그런 저력은 보내주신 시집 속 ‘눈이 벌건 사내에 대하여4’에서의 시 쓰기에 대한 시인의 끊임 없는 노력과 시 쓰기에 대한 시인의 견고한 의지, 그 결과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 합니다.
(중략)
자연과 인간의 합일, 제가 꿈꾸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 정군칠 올림
이십오 년 전의 연서 한 장 봉인됐던 세월 풀어내던 시간
두 분 결의에 경의를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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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정군칠 선생님의 연서.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 (한그루, 20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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