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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2024 가을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10. 22.

 

 

    [특집 : 4.16 추모작품]

 

 

풍랑경보가 내려진 아침 - 김수열

 

 1

 선체수색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저희들은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습니다

 너무나 아픈 시간이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렵기만 합니다

 이런 아픔은 우리들로 끝났으면 합니다

 미수습자 5명의 이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기타 잘 치고 음악 좋아했던 남현철 군

 운동 잘해 체대 진학이 꿈이었던 박영인 군

 구명조끼 벗어 학생에게 주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가신 양승진 선생님

 감귤농사 꿈을 안고 제주로 가던 권재근 씨, 일곱 살 아들 혁규 군

 

 2

 세월호가 침몰한 지 1311일의 기다림 끝에 유가족들은 목포신항을 떠났다

 풍랑경보가 내려진 아침이었다

 

                     *시집 호모 마스크스(아시아. 2020) 수록

 

 


 

나도물통이 - 김순남

 

 

아무도 네 간 줄 모르고

아무도 네 온 줄 몰라도

너희는

너희의 시간 속에서

곱게곱게 살고 있었네

그렇게 물먹은 세상 걸음이

하안 꽃가루 폴폴 날리 며

말을 걸어주었네

그리워서

못 잊어서

예례동 대왕수천에 닿았노라고

고마워라

내 눈시울 뜨겁게 적시는 일도

부끄러우니 소리 내지 못하겠다.

 

 


 

세월 10- 김승립

 

 

그 집에는 아직도 밤마다 불이 켜져 있다

 

며칠 다녀온다던 아이는 10년 동안 돌아올 줄 모르고

 

가슴의 주름골이 날로 깊어가는 어미는

 

엄마, 보고 싶어. 미안해

 

바다로부터 건너온 10년의 아득한 시간을 읽는다

 

아무도 가라앉은 배의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바람의 지문마다 무고한 죽음들의 원통함이 뚜렷이 새겨져 있건만

 

그 누구도 그 죽음들에 마땅한 대가를 치른 바 없다

 

잊지 않겠다고 결코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한때는 가슴마다 노란 리본을 달았지만

 

잊지 않는 이보다 이미 잊어버린 자들이 무수히 늘어났다

 

언제라도 아이는 새가 되어서라도 돌아올지 모른다

 

내려놓을 수 없는 염원이 오늘밤도

 

집 앞 외등을 밝히우고

 

밤하늘 길 잃은 작은 별 하나 조용히 눈물 삼키고 있다

 


 

궤도 김항신

   -세월호

 

2014111일 토요일

초등학생 26

동창생 18명 제주항 집결

 

한일카페리호로 완도에 도착 관광버스로 대륜산 도착

 

고계산에 신고식 을리고,

대흥사 일주문 지나 부처님께 삼배 올리고

윤선도 생가 녹우당 앞 은행나무 수령 500년쯤 됐다는,

산으로 에워싸여 학자들 많이 나왔다는,

딸이 아들보다 잘될 수 있는 길 풍경이라는,

 

이틀째 날 아침

도갑사에서 잠시 절 법 수행 동참 참배 올리고

일행은 우수영으로 달렸다

물살이 휘몰아 날리는 우수영 앞바다 진도 팽목항 지척에서

불러본다, 너희를

 

자리돔 망둥이 숭어들이 펄떡이고 있었다

 

물먹은 몸뚱이는 수렁으로 빠져들며 속울음 찍고 있었다

 

엄마

엄마 배 속은 참 따뜻해요

 

엄마 곁에 있을 동안은 엄마의 숨결 목소리

 

모두 들을 수 있었는데 엄마 우주에서 둥둥 놀면서

미래를 꿈꾸며 기다리면서

엄마는 내 배에 밧줄을 걸어 주었잖아요

궤도를 마음껏 돌다 오라고 맛있는 것 다 먹여 주면서

그랬었죠! 그런데

 

우리는 세월 따라 질주하던 세월호를 타고

또다시 미래의 궤도에 올랐답니다

푸른 꿈을 안고요, 그런데 가슴이 벅차도록 엄마를 불러 보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메아리쳐 오지만

고작 세상에 태어나 오직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월척 한번 호되게 낚고 있네요

 

             * 시집 꽃항유(책과나무, 2019) 수록

 

 


 

그리움은 종교가 됐다 문상희

 

 

숱한 기포가 부글부글

올라왔다

주검이 된 영혼들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왜 끔찍한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가 2014416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먹먹한데

하필 십년만의 그날을 맞딱뜨렸다

2024416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온 세계에 난리를 일으킨

신종 바이러스가 잠잠할 쯤

기세가 당당한 수학여행 일행들이

바닷가로 밀려왔다

깔깔거리거나 충만한 즐거움을 누린다

일행 중 학생 몇 다른 길을 택한다

나는 바다가 제일 싫어

, 비수처럼 꽂힌 넋두리였다

 

세월호에 잃은 사람들은

기억의 바다를 갖고 있다

 

그들은 결코 조아려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간절한 기도를 할 때도

망망하게 쳐대는 조수간만의

높낮이에도 그저 내 숨소리 저금소리

사랑붙이를 그리며 냅다 풍덩

깊은 물길에 읖조린다

 

온 정신의 간절한 그리움이

종교가 된 사람들

 

 

                 *계간 제주작가2024 가을호(통권 제8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