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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항신 시집 '연서戀書'의 시(완)

by 김창집1 2024. 10. 24.

 

연서

    -아버지의 딸

 

  아버지, 내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돌담과 흙으로 집을 짓고 아버지 나를 보듬던 세월 한 5, 짧은 세월이지만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들, 지금까지 그 추억 먹으며 살고 있답니다.

  아버지 생각나시나요. 큰아버지와 식사하던 날, 아버지 무릎에 앉아 큰아버지 수저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 쳐다보던 기억, 그리고 사촌 오라버니 불러다 아버지가 글 가르쳐 주던 모습, 태둥이로 약하게 태어나 바람에 날아갈까 걷다가 무릎 까질세라 애면글면 하며 보듬어 주시던. 또 어느 날에는 동생 등에 업고 내 손잡아 밭일 가신 어머니 기다리며, 마당 앞 올레에서 원당봉 자락에 살레칭 ᄎᆞᆷ웨 밧 서리꾼 다울리던 아버지 목소리. 언제는 굴묵에서 키우던 어미닭 한 마리 잡아 닭백숙 만들어 먹이던 아버지의 숨결이 내 가슴 한쪽에서 늘 콩닥인다는 것을 느끼며, 유년시절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안개 낀 날이면 하안 안개꽃 한아름 안고 저 너머에 아버지 계실까 실낱같은 염원 담고 헤매곤 했답니다.

  아버지, 살다 보니 한세상 반백년 넘어 칠십 곱절 가깝다 보니, 난생 처음 역병이라는 것도 겪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눈앞이 아찔하게 숨통이 멎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단계에 처해 있기도 했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역병도 사그라들어 원만해지는 것 같아 이제는 덤으로 살아가는 삶에 무게 조금씩 비우며 살아야 할 때인 것 같아, 마음만 급속해지는 아쉬움이 더 느껴지는 세월이라는 걸 알 것 같습니다.

 

 

 

  천상에 계신 아버지, 어린것들 남겨 놓고 가시는 발걸음은 어떠셨는지요. 친구 가는 길에 벗 삼아 달라시는 요청 거절하지 못하셨다는 우리 아버지, 요단강 건너며 맥 놓으시던 발걸음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어린것 얼굴도 못 보고 가는 걸음, 어린것들 눈에 밟혀 가시는 걸음걸음 애간장 녹았을 아버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진다는 얘기, 살다 보니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외로움과 아뜩한 일들 가시밭길도 있었지만 아버지 딸이라서 용기를 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손수 지은 우리 보금자리던 초가집, 나중에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시가지 도로로 행정구역 나뉘면서 집터만 조금 있답니다. 이제 나와 막내 아, 눈이 커서 슬픈 꽃다지언니와 눈망울이 아꼬운 애기 막냉이와 어머니, 천상에서 함께 잘 있지요. 여기에 있는 큰 년도 세월 앞엔 장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셋년도 족은년도 같은 세월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아직 할 일이 좀 더 남아 있어서 또 오늘을 삽니다. 선비의 기질로 태어나신 아버지처럼 사랑해 주시던 이 딸도 아버지 닮은 딸이고 싶어 오늘도 마음을 모아 봅니다.

  아버지, 나 조금만 더 힘을 내 살아볼게요. 막내 놈도 아직 그대로이고 다른 애들은 그래도 그냥저냥 살아가는데. , 아버지 말젯년 아이덜은 장가 다 보내어 이제 곧 손자 볼 것 같습니다. 이생에서는 서로 못 보며 살았을지언정 그곳에서 저희들 잘 보살피고 있다는 걸 느끼며 알기에 아버지, 이 딸 천상으로 보낸 흔적들 잘 보셨지요. 아버지 지은 옛터 원당사바라 보며 고온단 위에 고이 얹어 자랑하던 사랑하는 아버지 딸, 지금까지 가슴에 달아드리지 못한 카네이션이라 생각하며, 이번 20245, 어버이날 맞으며 다시 세 번째 시집, 하안 안개꽃 한아름 아버지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