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11. 12.

 

 

환대 마을 이장 김혜천

 

 

도시 생활이 각박하다구요?

 

십 년 동안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냈다구요?

 

여름내 옻닭을 끓여 식구들을 먹이기도 전 퍼 나르는

같은 층 이 여사

 

꽃밭을 잘 가꾸어 행인을 기쁘게 하고 시골서 농작물이

오면 나누기 바쁜 건너 동 소설가

 

투병 중이면서도 명랑을 잃지 않는

성경책 읽는 것이 일상인 품격의 아이콘 옆집 노 여사

 

얼마간 기척이 없으면 별일 없으시죠? 하면서

현관을 노크하는 다정다감 위층 박 여사

 

봄에는 화전놀이로 가을에는 송편 만들기로

가꿈은 찻자리로 마음을 모으는

 

나는 순하디순한 이 환대 마을의 시 쓰는 이장이랍니다.

 

 


 

종이의 변증법 - 나병춘

 

 

종이는 칼이다

무심코 누군가 보내 준 시집 모서리에 살짝 베이다

핏방울이 슬몃 비추더니

이내 이슬처럼 맺힌다

 

핏방울로 써라하는 듯

백지 모서리가 나를 쏘아본다

쪽을 열 때마다 매서운 눈망울들

꼭꼭 눌러쓴 펜촉의

예리한 끝이 느껴진다

 

무림 고수의 서늘한 눈빛

섬광처럼 빛난다

일진광풍이 휘몰아친다

, ,

순식간에 결판나는 칼싸움

댓잎 사이 번지는 달빛 그림자

칼을 놓친 자는 말없이 표표히 사라진다

 

바늘로 우물을 파라’*

여행도 글쓰기도

바늘로 우물 파듯

심장을 콕콕, 저미는구나

 

아차

한눈팔다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

* 오르한 파묵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인용.

 

 


 

11남대희

 

 

바람이 창문을 스친다

낡은 나뭇잎들 총총히 잠들고

길 위엔 떨어진 기억들만 조용히 남아 있다

차가운 공기 속에 스며든 향기

누군가의 옛이야기 같은

무성한 침묵의 흔적들

 

노을이 희미해지는 저녁

하늘은 한층 깊어지고

나무들은 더 이상 말이 없다

서리 내린 아침이 다가올 때쯤

우린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잊혀질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한 번의 떨림을 기다리는

 

 


 

당신이 나의 시입니다 - 목경희

 

 

당신은 내 삶의 빛이자 그림자,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나를 맴돌고

내 마음을 흔드는 시입니다

 

당신은 내 사랑의 시작이자 끝,

사랑과 이별, 그리움을 가르쳐 주고

나의 등을 다독여 줍니다

 

당신 없는 세상은 나를 절망하게 만들고

이별은 나를 끝없는 슬픔 속에 빠뜨립니다

내 삶의 가장 큰 슬픔이자 아픔

평생 안고 가아 할 상처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를 위로하고

당신의 존재가 내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당신은 내 삶의 길을 밝혀 주는 등대입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시로 채우는

당신이 나의 시, 나의 전부입니다.

 

 


 

파는 이유 장우원

 

 

- 일 끝나면 녹초가 됩니다

 

- 코로나로 집에서 쓰려고 샀지만

 

- 취미보다 생활비가 필요해서

 

- 급전 때문에

 

- 꼭 필요한 분께 보내고 싶어요

 

- 사 놓고 바빠서 개봉만 했어요

 

인터넷 중고 매물에는

물건보다 더 많은

사람이 들어 있다

눈물이 녹아 있다

 

 

                           *월간 우리11월호(통권 제437)에서

                                      *사진 : '나무의 사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