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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3)

by 김창집1 2024. 11. 14.

 

 

무등산

 

 

광주에서 그가 말했다

어릴 적에

광주의 산이란 산은 모두가 무등산으로 알았다고

해도 달도 별도 거기에서 뜨고 지는 것으로 알았고

물도 바우도 구름도 거기에서 나려오는 것으로 알았다고

 

금남로 4가역에서 그가 말했다

모든 큰 소리는 무등산에서 들려왔다고

새소리도 물소리도 밤소리도 거기에서 들렸다고

북소리도 트럼펫 소리도 오포 소리도 거기에서 들려왔고

독경 소리도 함성 소리도 울부짖음도 거기에서 들려왔다고

 

송정리에서 소를 끄는 무등을 보았고

양동시장에서 품을 재는 무등을 보았고

용봉동에서 음을 고르는 무등을 보았으며

산수오거리에서 붓대를 잡은 무등을 보았다고

모든 평평한 것들은 거기에서 높아지는 것이었고

모든 드높은 것들은 거기에서 낮아지는 것이었다고

 

석양을 뒤로하고 그가 말했다

아직도 그때처럼

광주의 산이란 산이 무등산이었다고

세계의 산이란 산이 무등산이었다고

상서로운 모든 것들이 무등이 주는 선물이었고

상처 입은 모든 것들이 무등이 주는 시련이었다고

 

 


 

그 목소리

 

 

내 귓속에

들어온 그 목소리

그때의 그대가 분명하다

 

잠을 자다가도

그 목소리 피어나서 흠칫

놀래라 그립던 목소리

 

길을 가다가도 뒤돌아다

머리채 흔들며 귓바회 붉히면서

가끔보다 애틋하고 솔깃하고 황홀하고

 

내 귓속에

똬리 틀고 속눈썹 깜빡이며

볼웃음 짓는 아픔이여 위안이여

 

어제도 그제도 달포에도

그때 그대로 물살 짓는 그 목소리

눈물 나다 휘우듬한 도돌이표여

 

누군가가 그 목소리

귀에 들어간 몽예라고 부른다면

아프지 않을까 그럴까

 

 


 

오월에 피는 꽃

 

 

오월이면

광주의 오월이면

배고픈 새, 총 맞아 죽은 오월이면

망월동 거리거리 이팝꽃

무럭무럭 피어납니다

 

오월에 피는 꽃은

찔레꽃, 아카시아, 산딸꽃, 산사화, 물푸레, 때죽나무

순백의 하안 꽃만 오지게도 피어납니다

가신 님 고이 보내 드리려는 눈물꽃입니다

 

오월에 피는 꽃은

자유, 평등, 박애, 저항과 정의의 꽃

하나됨으로 메이 피플로

뜨겁게 뜨겁게 피어납니다

오월을 오월답게 하려는 민주주의 꽃입니다

사랑도 명예도 비워두려는 광주의 꽃입니다

 

오월이면

광주의 오월이면

배고픈 새, 손에 손을 잡고

남누리북누리 통일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르완다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미얀마에서도

평화의 꽃으로 피어납니다

 

오월에 피는 꽃은

순백의 하안 꽃만 오지게도 피어납니다

가신 님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살살이꽃입니다

 

 


 

금남로

 

 

우리 사이에 강물이 흐른다

우리 사이에 사막이 가로놓여 있다

너는 화톳불 놓고 스크럼 짜고 다가온다

나는 방패로 진압봉으로 막아서며 저지한다

 

적인도 악연도 아닌데

너는 무찌르고 나는 물리쳐야 한다

최루탄 가스 자욱한 아스팔트 거리에서

너는 무엇을 위해 불을 놓아야 하고

나는 누구를 위하여 불을 꺼야 하는지

 

우리 사이에 강물이 흐른다

우리 사이에 사막이 가로놓여 있다

나는 승리에 승리를 얻어내고자 하고

너는 좌절에 좌절을 이겨내고자 하고

오늘도 내일도 승산 없는 싸움은 이어졌다

 

어느 때에나 나는 너를 기다리고

너는 신기루처럼 가물거리며 몰려온다

너는 찬란한 도시의 침묵에 돌을 던진다

나는 사막의 평화를 지키고자 방패를 세운다

네가 던진 화염병에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80년 광주에서 온 편지

 

 

  그때 나는 군대에 있었다

  계엄사령관이 광주에서 우동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폭도들이 관공서를 습격해서 무정부 상태라는 것이다 신문에서도 복면을 한 무리들이 총을 들고 트럭을 타고 있었다

  선임이 은밀히 불렀다 광주에 폭등이 일어난 게 아니라고 했다 데모를 진압한다고 공수부대가 투입되어서 곤봉으로 마구 때리고 대검으로 찔러서 많은 시민들이 죽었다고 했다

  고개를 꺄우뚱했더니 편지를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씨에게

  지금 광주에 난리가 났어요

  계엄령이 내려지고 공수부대가 들어와서

  전대 정문을 막고 거리거리 몰려다니면서

  시민들을 마구 죽여서 피범벅이 되었어요

  시민들이 무기고를 털어서 총을 들었어요

  지금은 군대가 물러나서 외곽을 막고 있어요

  기차도 버스도 멈췄어요 시외 전화도 끊겼어요

  광주가 고립되었어요 누구도 벗어나지 못해요

  언제 군대가 다시 쳐들어올지 불안한 나날이에요

  뉴스에서는 폭도들이 광주를 점령했다고 떠들어대요

  시민들이 나서서 진실을 알리려고 이렇게 편지를 써요

  광주는 시민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사건사고 하나 없어요

  광주는 폭도가 아니에요 민주주의를 원해요

 

 

                                  *최기종 시집 만나자(문학들,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