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4 제15호의 시(1)

by 김창집1 2024. 11. 10.

 

 

이별 - 강선종

 

 

핸드폰에 날아든 문자

안타까운 소식 전합니다

또 한 친구가 떠났구나

 

동창이란 이름으로 길동무가 된 지

어언 60여 년

칠순을 지나 팔순을 향하는 길목에서

이별이 잦다.

 

잠시 왔다가

물처럼 바람처럼

이슬처럼 사라져야 할

운명 앞에 놓인 인생길

다시 볼 수 없는 상실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관복이 있어서

시정의 책임자가 되었을 때

도울 일은 없는가?” 물으며

우정을 다지던 의리의 사나이

한마디 작별 인사 나누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친구야!

그 곳 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말고 잘 지내시게

 

 


 

가을의 색깔 강연익

 

 

가을 바스락 바스락 밟히는 낙엽속에

지나온 세월의 흔적들이 수북이 쌓여

소리 타고 내게로 오는 것 같다

 

저 산모퉁이에서 곱게 익어가는

낙엽의 사연들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왠지 낙엽진 길에서 고독을 씹는다

 

어느새 다들 떠나버린 들판에

당만의 추억은 이별만 남긴 채

황혼길에서 정처 없이 헤매고 있다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 가을에 내 인생의 마지막 잎새는

어떤 색깔로 고독하게 떠날 것인가?

 

 


 

병상일지 - 김동인

 

 

아무도 보지 않는다.

혼자 좋아서 침대에 앉아 감격을 누린다.

미친 사람처럼 동새벽에 세상을 향해 외친다.

나도 걸을 수 있다고.

벅차고 감격스러운 아침이다.

절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가 나온다.

괴로운 짐을, 어려운 멍에를

부부의 연으로 오롯이 혼자 떠맡은 배우자에게 울컥 고마움을 느낀다.

병상에서의 불평과 억지를 받아주고 이겨낸 나약하게 보이는 한 여성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현장이다

 

 


 

품바, 춤이나 출까? - 김성주

    -옥수수 1

 

 

옥수숫대는 새끼들을 꼭 껴안고 있었다

첫째 둘째 셋째 막내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주먹 쥐고 큰 울음 토해내며

세상에 나온 나

키질 몇 번에 쭉정이 되어 날리다

품바의 양은그릇 속으로 떨어졌다

 

일당 10만 원

 

-제일 위 하나만 남기고 다 따야 한다

밭주인의 엄중한 경고

 

오리걸음으로 종일 기어다닌 고랑마다

강냉이 죽을 받던

찌그러진 양은그릇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옥수숫대들이 몸을 비틀기 시작하자

바람이 일었다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파열

통증 치료로 5만 원을 지불하고 돌아오는 길

 

옅은 안개가 흐르고 있다

옥수수 댓잎처럼 뻗은

이 도시의 길들은 아픈 어디에 닿으려는 걸까?

바람이 분다

 

 


 

애월 바다의 꿈 김영숙

 

 

오름을 오르는 바람이

한라산 정상에 아슬한 줄을 맬 때

삶에 겨워 뒹구는 나뭇잎들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무거웠던 심로心勞를 벗어야 할 때

고단한 삶에 같이 가야 하는 멍에가 있다면

한사코 벗어 던지고 싶은

떨어지지 않은 슬픔이 있다면

화산이 터지며 흘러내린 그날처럼

거북목으로 자란 애월 바다를 찾는다

 

한때는 웅크린 못난이처럼

가까이 다가서면

외면하고 돌아서는 너는

숨어 흐르는 계곡물처럼

으로 흐르는 연화지

끊임없는 물결에 팍삭 주저앉은 소식을

싸고도는 바닷물이 어루만져 주는 한담 앞바다

 

밀려오는 파도는

바람을 일으키고

못견딘 자들이 와서 던지는 슬픔에

까맣게 멍이 든 바윗덩이를

큰 물결이 부딪쳐 산산히 부숴내는 어둠을

만선의 꿈을 싣고 들어오는 작은 배들이

어스름한 새벽을 끈다

 

어둠에 걸린 초승달이

설움 하나를 끌고 기울 때

끝나지 않은 가슴앓이도

살강살강 부딪쳐 오는 물결

나를 감싸고 도는 설겅한 바람

내 안에 네가 뛰고 있는 것을 안 것은

짙게 깔린 해무 속에

꿈틀거린 아침 해가 솟고 있기 때문이었다

 

첫 비행기가 오고 있다.

 

 

                          * 涯月文學(애월문학)2024 통권1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