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집 1 - 강상돈
누구인들 말 못할 속사정은 갖고 있지
잡풀만 우거져서 폐허로 남아있는
이 가을 빈 마당에서 가슴앓이 하는 풀벌레
허울 좋은 재개발에 버거워서 더욱 슬픈
중심 잃은 갈피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눈 퉁퉁 부은 낮달이 간신 눈을 뜨고 있다
생채기도 곱씹으면 꽃으로 피어날까
깍짓손 푼 담쟁이가 엄살 자주 피우고
화려한 놀빛에 속아 잠시 울컥 토한다
옛집에 왔지만 속엣 말도 하지 못해
자꾸만 커져가는 그리움을 가습에 묻고
무성한 대나무만이 빈집을 지키고 있다
♧ 쉰다리 – 강애심
부릅트게 돌아다녀도
축축처진 찬밥은
누룩과 물을 만나
두루 섞여 발효되면
갈등에 빚어진 분열
부글부글 툭 툭 툭
온전히 내려놓아야
어우러져 하나 되어
제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세포가 되어
턱 막힌 시큼 텁텁함도
빛이 되고 소금이 되리
♧ 물안개 지는 저녁 – 강영미
고단한 발가락들이 아랫목 같은 물에 든다
바람 저어 온 시간, 날개들이 접히고
하도리 철새도래지 갈대숲이 흔들려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불시착한 소식 너머
뜨는 길 앉는 길 다 지우려던 바람이 자고
온종일 파닥거리다 막힌 목을 푸는 저녁
야원 부리 씻어내며 물안개가 내리네
뜨물같이 순한 물에 아린 속이 풀리네
외로 튼 목을 기대려 이제 나도 집에 드네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 2024 제33호에서
*사진 : 전국에 눈이 날리고 바람이 불던 날(11.29) 김녕바다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7) (1) | 2024.12.03 |
---|---|
'돌과 바람 문학' 2024 가을호의 시(1) (1) | 2024.12.02 |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6) (0) | 2024.11.30 |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12) (0) | 2024.11.29 |
'애월문학' 2024 제15호의 시(3) (2) | 2024.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