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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시조' 제33호의 작품(2)과 파도

by 김창집1 2024. 12. 1.

 

 

빈집 1 - 강상돈

 

 

누구인들 말 못할 속사정은 갖고 있지

잡풀만 우거져서 폐허로 남아있는

이 가을 빈 마당에서 가슴앓이 하는 풀벌레

 

허울 좋은 재개발에 버거워서 더욱 슬픈

중심 잃은 갈피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눈 퉁퉁 부은 낮달이 간신 눈을 뜨고 있다

 

생채기도 곱씹으면 꽃으로 피어날까

깍짓손 푼 담쟁이가 엄살 자주 피우고

화려한 놀빛에 속아 잠시 울컥 토한다

 

옛집에 왔지만 속엣 말도 하지 못해

자꾸만 커져가는 그리움을 가습에 묻고

무성한 대나무만이 빈집을 지키고 있다

 

 


 

쉰다리 강애심

 

 

부릅트게 돌아다녀도

축축처진 찬밥은

 

누룩과 물을 만나

두루 섞여 발효되면

 

갈등에 빚어진 분열

부글부글 툭 툭 툭

 

온전히 내려놓아야

어우러져 하나 되어

 

제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세포가 되어

 

턱 막힌 시큼 텁텁함도

빛이 되고 소금이 되리

 

 


 

물안개 지는 저녁 강영미

 

 

고단한 발가락들이 아랫목 같은 물에 든다

바람 저어 온 시간, 날개들이 접히고

하도리 철새도래지 갈대숲이 흔들려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불시착한 소식 너머

뜨는 길 앉는 길 다 지우려던 바람이 자고

온종일 파닥거리다 막힌 목을 푸는 저녁

 

야원 부리 씻어내며 물안개가 내리네

뜨물같이 순한 물에 아린 속이 풀리네

외로 튼 목을 기대려 이제 나도 집에 드네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4 33호에서

                 *사진 : 전국에 눈이 날리고 바람이 불던 날(11.29) 김녕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