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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7)

by 김창집1 2024. 12. 3.

 

 

꽃물 제갈양

 

 

그저 살짝 눈길이 닿았을 뿐인데

손톱 깊숙이 꽃물이 들 때 있지요

 

우연이란 애초 있을 리가 없어요

인연이란 무르익어야 배어들지요

 

그대 흰 손가락 위에 머문 바람에

먼 별들 몇, 얼굴 붉히며 반짝였지요

 

명주실로 비끄러맨 그대 생채기

매만질수록 깊어지는 꽃물이에요

 

 


 

밥상 항성의 기억 장우원

 

 

접어 세워 둔 플라스틱 항성을 꺼내

방 한가운데 펼치면

행성 혹은 소행성들이

정갈하게 모여 앉았다

 

식구들 가운데 자리 잡은

밥상은 우주의 중심

 

이 경건함을 칭송하느라

수저는 끝이 닳고

젓갈은 휘거나 짝이 맞지 않았다

 

가끔 항성의 중심이 무너지는 이유는

궤도를 벗어난 행성

생활의 무게 때문

 

다행스럽게

인유인력人有引力의 도움으로

우주는 소멸하지 않은 채

운행을 이어갔다

 

초신성으로 되돌아간

현비유인경주이씨 외곽에

새로운 성운이 몰려들었다

 

밥상은 마지막까지

식구들을 밝혀 주었다

 

 


 

탁란에 대한 예의 한상호

    -아홉 살짜리를 여행 가방에 가두어 죽인 의붓어미에게

 

 

열흘 남짓 품었던

그 정 하나로

 

뱁새는 오늘도

애벌레를 물린다

 

아기 뻐꾸기 붉은 입속에

 

 

                           *월간 우리11월호(통권 제43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