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동백
여수라고 벙긋하면
저도 모르게 벙글어져서
붉은 속내 드러내는가
아픈 멍울이 불거지고
그날의 그 이름 물어물어
여민 가슴 속속들이 빠개지는가
물 맑은 여수바다
못내 그립던 사랑 겹겹이 피어나서
동박새도 직박구리도 저 좋다고 화답하는가
여수라고 벙긋하면
저도 모르게 뚝뚝 떨어져서
언 땅 벌겋게 물들이는가
♧ 제주도 오름
올라가야 슬픔이 보이는 곳
머리카락 흩날리며 길어져서 가을이 되는
거기 물봉선도 향유화도 용담꽃도 피어나지만
조릿대도 억새도 청미래덩굴도 자라난다지만
올라가야 아픔이 보이는 곳
창 터진 자리 죽은 자도 산 자도 한데 어우러지는 곳
왜 쏘았니? 왜 죽였니?
곤줄박이 한 마리 쏜살같이 숲 너머로 날아간다지만
올라가야 용서가 보이는 곳
붉은 상처길 둘레둘레 달처럼 둥글러지는 곳
사름들이 학살당하고 풀 한 포기도 성하지 못했지만
오르는 오름마다 말이 막히고 숨이 막혀서 한 생을 건너 간다지만
올라가야 평화가 보이는 곳
하늘도 바다도 들도 산도 어우러지게 하는 곳
구럼비바위 깨어지고 연산호도 층층고랭이도 신음한다지만
수평선 너머 화약 냄새 진동하고 백상아리도 범고래도 들어온다지만
올라가야 희망이 보이는 곳
미움도 증오도 화해가 되고 상생이 되어서 송이송이 피어나는 곳
슬픔도 아픔도 어영나영 구릉이 되고 산록이 되고 바람이 되고
제주도 풍광이 된다지만 물장오리 설문대할망 비구름 몰아온다지만
♧ 파르티잔
그대 그 산 오르는가
꽃 피어서 오르는가
강 건너 서덜이 지나서
산등성이 돌아서 절벽을 타고
신념의 그 산 오르는가
새봄이 피어나서 오르는가
그대 그 산 숨어드는가
숲이 우거져서 숨어드는가
견불사 선녀굴 독바위 루트를 타고
반미 반제 해방 투쟁 돌입하는가
벽소령 비리내골 유격 아지트에도
산안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가
그대 그 산 내려오는가
노을이 붉어져서 내려오는가
분대로 소조로 무리 지어 총대 메고
피의능선 골짝골짜기 내려오는가
마천으로 삼정으로 밤의 나라로
칠십 리 길 보급 투쟁 나서는가
그대 그 산 누우시는가
나목에 기대어 누우시는가
진달래 철쭉 잡목림 바위틈 사이사이
엉치뼈로 철모로 구명 난 해골로
만년필도 숟가락도 잃어버리고 그대여
벽소령 푸른 달빛 아래 누우시는가
*문학들 시인선 032 최기종 시집 『만나자』 (문학들, 2024)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3) (0) | 2024.12.07 |
---|---|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14) (1) | 2024.12.06 |
조직형 시집 '천개의 질문'의 시(13) (1) | 2024.12.04 |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7) (1) | 2024.12.03 |
'돌과 바람 문학' 2024 가을호의 시(1) (1) | 2024.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