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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5)

by 김창집1 2024. 12. 5.

 

여수동백

 

 

여수라고 벙긋하면

저도 모르게 벙글어져서

붉은 속내 드러내는가

 

아픈 멍울이 불거지고

그날의 그 이름 물어물어

여민 가슴 속속들이 빠개지는가

 

물 맑은 여수바다

못내 그립던 사랑 겹겹이 피어나서

동박새도 직박구리도 저 좋다고 화답하는가

 

여수라고 벙긋하면

저도 모르게 뚝뚝 떨어져서

언 땅 벌겋게 물들이는가

 

 


 

제주도 오름

 

 

올라가야 슬픔이 보이는 곳

머리카락 흩날리며 길어져서 가을이 되는

거기 물봉선도 향유화도 용담꽃도 피어나지만

조릿대도 억새도 청미래덩굴도 자라난다지만

 

올라가야 아픔이 보이는 곳

창 터진 자리 죽은 자도 산 자도 한데 어우러지는 곳

왜 쏘았니? 왜 죽였니?

곤줄박이 한 마리 쏜살같이 숲 너머로 날아간다지만

 

올라가야 용서가 보이는 곳

붉은 상처길 둘레둘레 달처럼 둥글러지는 곳

사름들이 학살당하고 풀 한 포기도 성하지 못했지만

오르는 오름마다 말이 막히고 숨이 막혀서 한 생을 건너 간다지만

 

올라가야 평화가 보이는 곳

하늘도 바다도 들도 산도 어우러지게 하는 곳

구럼비바위 깨어지고 연산호도 층층고랭이도 신음한다지만

수평선 너머 화약 냄새 진동하고 백상아리도 범고래도 들어온다지만

 

올라가야 희망이 보이는 곳

미움도 증오도 화해가 되고 상생이 되어서 송이송이 피어나는 곳

슬픔도 아픔도 어영나영 구릉이 되고 산록이 되고 바람이 되고

제주도 풍광이 된다지만 물장오리 설문대할망 비구름 몰아온다지만

 

 


 

파르티잔

 

 

그대 그 산 오르는가

꽃 피어서 오르는가

강 건너 서덜이 지나서

산등성이 돌아서 절벽을 타고

신념의 그 산 오르는가

새봄이 피어나서 오르는가

 

그대 그 산 숨어드는가

숲이 우거져서 숨어드는가

견불사 선녀굴 독바위 루트를 타고

반미 반제 해방 투쟁 돌입하는가

벽소령 비리내골 유격 아지트에도

산안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가

 

그대 그 산 내려오는가

노을이 붉어져서 내려오는가

분대로 소조로 무리 지어 총대 메고

피의능선 골짝골짜기 내려오는가

마천으로 삼정으로 밤의 나라로

칠십 리 길 보급 투쟁 나서는가

 

그대 그 산 누우시는가

나목에 기대어 누우시는가

진달래 철쭉 잡목림 바위틈 사이사이

엉치뼈로 철모로 구명 난 해골로

만년필도 숟가락도 잃어버리고 그대여

벽소령 푸른 달빛 아래 누우시는가

 

 

               *문학들 시인선 032 최기종 시집 만나자(문학들,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