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닮은 우리 딸 - 김문수
나는 엄마 등을 밀었다 할머니 집에 가기 싫다던 여섯 살 딸아이는 소꿉놀이처럼 할머니 등을 밀면서 “할머니 입속에 장난감 이빨이 있네, 아휴 난 진짜 이빨인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근데 정말 재미있다?”라며 틀니를 가지고 는다 아버지는 밥상을 엄마 가까이 밀어주며 밥을 얹은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놓는다. 손을 떨며 숟가락 위에 밥을 입속에 넣는 엄마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엄마도 할머니 되는 거야?
지금 할머니 되고 있어?” 입속에 오물거리며 먹는 밥이 또르르 굴러간다
아니 엄마는 아직 멀었어
딸아이가 크크크 웃으며 말한다
엄마가 할머니 되면
내가 등 밀어줄께 그리고
염색도 해 줄 거야
나를 닮은 우리 딸 참 예쁘다
♧ 빈자리 – 김순란
세 살 난 누나는 무심히
갓난아기 동생 귀엽다고 놀아 준 적 밖에 없는데
세상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신생아 응급실로 가버린 아기
인큐베이터 속에서 잠시 쉬다 가겠노라며
외박을 선언해 버린 빈자리
그 빈자리에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가는
내 동생 어디 갔어
언제와
동생 찾다가 잠이 든 그날 밤
창밖에는
조용조용 눈이 찾아와 밤을 밝힌다
♧ ᄑᆞᆺ감 - 김순이
족고 볼나위 엇인 감
아모도 눈질을 안 주주
요름 ᄒᆞᆫ철
과랑과랑 ᄂᆞ려쬐는 햇빗
비 오듯 ᄄᆞᆷ을 흘치명 타사
짚은 빗깔을 내운덴 ᄒᆞ는 갈옷
ᄌᆞᆫᄌᆞᆫᄒᆞᆫ 감
ᄒᆞᆫ 구덕 채왕 ᄈᆞᆺ는 일은
ᄒᆞ나 ᄒᆞ나 넘어온 폐적을 모도왕
ᄇᆞᆯ고롱이 물들게 ᄒᆞ는 거주기
너미 초라왕 웨멘ᄒᆞ는 감
경헤도 안적
ᄒᆞᆫ 번도 배신ᄒᆞᆫ 적이 엇주
ᄄᆞᆷ 흘친 만이
온몸뗑이로 느끼주
감물들인 옷에서 나오는
ᄉᆞᆯ그락ᄒᆞᆫ 촉감을
♧ 땡감(표준어 역)
작고 볼품없는 감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지
여름 한철
쨍쨍 내리쬐는 햇볕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따야
강렬한 빛깔을 낸다는 갈옷
잔잔한 감
한 바구니 채우고 빻는 일은
하나하나 지나온 흔적을 모아
붉게 물들게 하는 것이다
너무 떫다 외면하는 감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지
땀 흘린 만큼
온몸으로 느끼지
감물 들인 옷에서 나오는
시원한 촉감을
♧ 선인장 일기 – 김정미
분명 가려웠고 아팠겠지
가시 박힌 살을 피가 나도록 박박 긁다가
기둥임을 알았을 때
굳은살로 더 단단해진 그녀
속울음을 겹겹이 끌어안고
맨발로 사막을 달리듯 견뎌온
그녀의 몸에 서린 실핏줄에서
숨구멍을 키워낸 게다
눈을 뜨면 등을 구부렸다 폈다가
결코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곳을 택한 이유
평생을 누군가의 손발이 된다는 거
그러다가 겨우 잠을 청할 즘이면
그녀의 손끝을 타고 흘림체 행간 행간에
마른 눈물방울을 걸어놓는다.
선인장이 스캔 되는 동안
그녀의 몸에서 또 하나의 열매가 익어간다
*돌과바람문학회 간 『돌과 바람 문학』2024. 가을(통권 제1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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