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낭시대 사진첩 – 김대용
1. 아직 서른은 아니었다 파리 북역에서 기차를 탄다
보르도역에서 일꾼들 찾는다는 광고를 보았다
예쁜 주인 할머니가 왔다
포도원에는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일했다
포도를 따고 광주리를 나르는 그들의 어깨는 튼튼했다
포도주와 갓 구운 빵 절인 올리브
우아한 만찬 일주일 그렇게 계절 노동자였다
2. 다시 기차는 한나절 해바라기 평원을 달린다
아침 포도주 잔술을 마시고 꼬치안주로 허기를 채우고
돈키호테를 만나고 일요일을 기다려
피카소를 보았다 티켓 무료입장은 포도주 몇 잔이 나온다
낮술은 즐거웠다
3. 이즈음 내 나라 또래 친구들은 오늘 묻은
최루탄으로 따끔거리는 얼굴을 씻고 머리 감고
눈 비비면 안된다 소주를 수건에 적셔 조심히 닦아야 한다
식초 적신 마스크를 써라 하고 있었다 한다
4. 바퀴벌레가 날아갔다 TV에서 참새 떼는
하루 종일 조잘거리며 산다
대낮에 박쥐가 날아다니는 것은
얼마다 두려운 일인가
그 도시의 전봇줄에 까마귀 떼 지어
앉아있는 모습은 공포다
5. 낚시대에 그물을 달고 고기잡이하는 사람은
강태공과 다르다 쯧 쯧 어디서 낚시를 배웠는지
6. 침묵하며 외면하는 사는 법에 익숙하지 못해
점령한 힘든 세상 바라보며 이제
숨 찬 약속 따위는 버린다
다큐멘터리 이외에는 더 이상 감동 못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그의 처진 어깨 위로
우연히 만난 그들은 그 사고의 매듭을 이해할까
♧ 이별의 과녁 - 김동현
엄마는쓰레기야
아이의 말이
칼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마구 잘린 팔뚝을 흔들며
채찍처럼 울었다
한 시절
뿌리로 얽혀 있던 시간이 깨진
거울처럼 눈에 박히던 그날
느닷없는 선언처럼 섬을 떠나버린
차마 돌아오지 않는 변심 알 수 없어
혼자만혼자만
주먹처럼 작아졌던 그날
돌아오지 못할 화살을 던지던 아이는
품지 못할 답으로 버티던 엄마를 버렸다
악령을 쫓듯 몸엣것 쏟아내던 아이 안고
응급실 달려갈 때도
찢어진 현관 봉합하는 수술실 앞에서도
나는 눈물조차 버거운 벽이었다
좆같은신에게회개하지마
사라진 인연의 꼬리에 대고 질러대던
악다구니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뻔한 목청도
자폭하듯 안아버리고 싶었으나
멈춰버린 줄넘기에 넘어진 나는
우연의 형식조차 마련하지 못한 나는
원주율 같은 주문 앞에서
위태로운 바닥이었다
새벽 경찰이 찾아왔던 그밤
잡긴 아이의 방문을 뜯었던 그밤
버릴 수 없는 미련으로 목을 칭 칭 감고
죽어버릴거야죽어버릴거야
칼날같은 핏물같은 울음같은
아이의 몸을 감싼 수만 있다면
불이고 독이고 차라리
묵묵한 벽이고 싶었으나
엇나가버린 이별의 겨냥 앞에서
나는 무기력한 심판이었다
끝내 부드러운 과녁도 되지 못한
명중을 외면하는 울음이었다
♧ 천지연 폭포 - 김병심
초록이 올 때까지
사오기 피던 길을 잊지 말기로 해요
봄 외투를 질리게 입지 못하는 시간이라 해도
한 페이지의 한 문장 정도로만
밤길이 좋아서 걷던 길이니까요
하늘에 그물을 쳐놓고 꽃으로 한철
꽃이 뿌린 눈물로 또 한철
한 철만 나누던 인사가 좋아서 걷던 길을 잊지 말기로 해
서로 눈을 맞추며
길 하나를 바꾸고
산을 넘어 길 하나를 만들고
노루귀로 들여다보고
사오기 꽃반지 끼고 입술을 깨물고
등 돌린 겨울을 참고 있었나요
적막한 여름에 서 있었나요
유자가 이는 폭포까지
줄을 긋고도 모자라 별을 그려 넣은 문장 속에서
사오기 필 때까지 잊지 말기로 해요
*계간 『제주작가』 2024 가을(통권 제86호)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5) (3) | 2024.12.15 |
---|---|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14) (0) | 2024.12.14 |
월간 '우리詩' 12월호의 시(1) (1) | 2024.12.12 |
'돌과 바람 문학' 2024 가을호의 시(2) (3) | 2024.12.11 |
'애월문학' 2024 제15호의 시(4) (1) | 2024.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