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지 신탁 - 김영순
새철이라 봄빛이 절벽을 기어오른다
뒤질세라 절에 간다, 보리암 찾아간다
양초에 촛불을 당기니
빌 일이 많기도 해라
무얼 먼저 앞세울까 잠시간 머뭇머뭇
시험합격 건강회복 직장취업 세계평화
수많은 나의 어머니 만사를 거념한다
그 속내 복사하면 행간마다 소설이다
입 밖으로 흘리면 행여나 동티날까
슬며시 백지로 낸다
촛불이 출렁인다
♧ 절규 – 김영숙
- 호랑지빠귀
입 밖에 내지 못해 쪼글한 그 이름을
새벽마다 숨어서 부르는 그 이름을
야아앙 방자아부지 칠십 년을 불렀지
‘수형인 김 아무개 대구형무소 사망’
아니라 아닐 테주 내뿜는 담배 연기
갈 곳을 잃은 눈빛도 그 동굴 코발트빛
온다 간다 말없이 오지 않는 사람을
툭하면 산 쪽으로 비명처럼 불렀지
익어서 까만 눈물을 검북낭에 매단 새
사방이 캄캄해야 어어이 어∼이
툭하면 마을을 향해 늦은 대답 어∼이
들을 이 이제 없어도 참꽃처럼 우는 새
♧ 바람까마귀 – 김윤숙
새들도 피치 못할 일이 있어 떠나왔을까
전깃줄 빼곡히 검정빛의 저 행렬
분쟁 속 내몰리는 사람들 그 누가 난민인가
헤어질 염두에, 생명을 담보로 한
팔뚝에 이름 새긴 가자지구 아이들
저 눈빛 차마 보고 만,
슬픔마저도 사치다
먹빛의 하늘아래 실시간 반영되는
손 놓친 핏빛 맨발 어디로 가야하나
공포탄, 날갯짓 새들 일제히 날아오른다
♧ 다음 지구 – 김정숙
잘 먹고 잘살려고 선택한 건 결코 아니다
오른 만큼 흔들리는 불안의 가지 끝에
단둘이 살을 맞대고 젖기만 하는 달팽이
안개 속에 휘 묻혀 감각을 팔았을까
호르몬 링거 맞으며 헛꽃으로 환한 정원
물 먹어 손 놓은 수국 분홍 파랑 틈에서
각자 집 지고 살아도 지금 좋다는 생명체
피운 지 며칠 됐다고 변하는 꽃말에 표류하여
더듬이 가다듬는 생 암수한몸이면 어때요
♧ 꿰꽃 닮은 여ᄌᆞ - 김정애
나신딘 아은요ᄃᆞᆸ의 시 주멩기가 싯다
시가 뒈지 못ᄒᆞᆫ 날 공치는 경ᄒᆞᆫ 날도
끗 모를 짚은 고팡 속 색깔의 밑천 뒈는
눈곱 낀 민ᄂᆞᆺ만이나 익숙은 맨ᄉᆞᆯ의 언어
안 왐샤 언제 왐샤 ᄒᆞᆫ저ᄒᆞᆫ저 재게 와
초저냑 개밥바라기 아기가 뒈는 그녀
애ᄆᆞᆯ른 날덜토 ᄆᆞ음먹기 ᄃᆞᆯ렷저
ᄌᆞᆫ딤의 정석 ᄀᆞᇀ은 꿰꼿을 닮은 여ᄌᆞ
손 대민 톡톡 까지는 시 주맹기가 싯다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 2024(제33호)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혜향문학' 2024년/하반기호의 시(2) (1) | 2024.12.29 |
---|---|
'애월문학' 2024 제15호의 시(6) (1) | 2024.12.28 |
월간 '우리詩' 12월호의 시(3) (4) | 2024.12.26 |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6) (3) | 2024.12.25 |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완) (1) | 2024.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