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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5)

by 김창집1 2024. 12. 27.

 

 

백지 신탁 - 김영순

 

 

새철이라 봄빛이 절벽을 기어오른다

뒤질세라 절에 간다, 보리암 찾아간다

양초에 촛불을 당기니

빌 일이 많기도 해라

 

무얼 먼저 앞세울까 잠시간 머뭇머뭇

시험합격 건강회복 직장취업 세계평화

수많은 나의 어머니 만사를 거념한다

 

그 속내 복사하면 행간마다 소설이다

입 밖으로 흘리면 행여나 동티날까

슬며시 백지로 낸다

촛불이 출렁인다

 

 

 

 

 절규  김영숙

    - 호랑지빠귀

 

 

입 밖에 내지 못해 쪼글한 그 이름을

새벽마다 숨어서 부르는 그 이름을

야아앙 방자아부지 칠십 년을 불렀지

 

수형인 김 아무개 대구형무소 사망

아니라 아닐 테주 내뿜는 담배 연기

갈 곳을 잃은 눈빛도 그 동굴 코발트빛

 

온다 간다 말없이 오지 않는 사람을

툭하면 산 쪽으로 비명처럼 불렀지

익어서 까만 눈물을 검북낭에 매단 새

 

사방이 캄캄해야 어어이 어

툭하면 마을을 향해 늦은 대답 어

들을 이 이제 없어도 참꽃처럼 우는 새

 

 


 

바람까마귀 김윤숙

 

 

새들도 피치 못할 일이 있어 떠나왔을까

전깃줄 빼곡히 검정빛의 저 행렬

 

분쟁 속 내몰리는 사람들 그 누가 난민인가

 

헤어질 염두에, 생명을 담보로 한

팔뚝에 이름 새긴 가자지구 아이들

 

저 눈빛 차마 보고 만,

슬픔마저도 사치다

 

먹빛의 하늘아래 실시간 반영되는

손 놓친 핏빛 맨발 어디로 가야하나

 

공포탄, 날갯짓 새들 일제히 날아오른다

 

 


 

다음 지구 김정숙

 

 

잘 먹고 잘살려고 선택한 건 결코 아니다

오른 만큼 흔들리는 불안의 가지 끝에

단둘이 살을 맞대고 젖기만 하는 달팽이

 

안개 속에 휘 묻혀 감각을 팔았을까

호르몬 링거 맞으며 헛꽃으로 환한 정원

물 먹어 손 놓은 수국 분홍 파랑 틈에서

 

각자 집 지고 살아도 지금 좋다는 생명체

피운 지 며칠 됐다고 변하는 꽃말에 표류하여

더듬이 가다듬는 생 암수한몸이면 어때요

 

 


 

꿰꽃 닮은 여ᄌᆞ - 김정애

 

 

나신딘 아은요ᄃᆞᆸ의 시 주멩기가 싯다

시가 뒈지 못ᄒᆞᆫ 날 공치는 경ᄒᆞᆫ 날도

끗 모를 짚은 고팡 속 색깔의 밑천 뒈는

 

눈곱 낀 민ᄂᆞᆺ만이나 익숙은 맨ᄉᆞᆯ의 언어

안 왐샤 언제 왐샤 ᄒᆞᆫ저ᄒᆞᆫ저 재게 와

초저냑 개밥바라기 아기가 뒈는 그녀

 

애ᄆᆞᆯ른 날덜토 ᄆᆞ음먹기 ᄃᆞᆯ렷저

ᄌᆞᆫ딤의 정석 ᄀᆞᇀ은 꿰꼿을 닮은 여ᄌᆞ

손 대민 톡톡 까지는 시 주맹기가 싯다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4(3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