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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4 제15호의 시(6)

by 김창집1 2024. 12. 28.

 

흔적 이철수

 

 

홀로 남겨진 자의 싸늘한 방

이별 적신 손수건 온기로 남아있어야 하거늘

떠나는 자의 밭은기침만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붙잡는다

 

고달프고 서러운 육신

서로 몸 들비비며 뒤엉킨

저 구더기의 꿀이 되었나

천장과 벽에 달라붙어

손바닥 비비며 기도하는 파리의 외침

떠난 사람의 흔적 지우는 일

숨 막히도록 아득하다

 

이 세상 마지막 이별 헛되도다

사랑은 끝났다고 말하지 말라

마지막 흔적이 되어준 독한 향기

구역질 날 것 같은 우리의 식은 사랑

아프게 꾸짖는다

 

 


 

성인봉聖人峰을 오르며 - 임애월

 

 

수천 년

직립의 시간을 지켜온 나무들

설산의 수도승처럼 묵묵하다

 

하늘도 비켜선

원시림 숲길

고요하게 빛나는 잎들의 환생

 

영혼의 수액을

정화수로 길어 올려

순백으로 피워낸 마가목 흰 꽃잎

 

성인聖人을 만나려면

심해의 파도 소리에

귀를 먼저 씻을 것

 

동해발 984m,

아타락시아로 가는 길은

난바다의 물이랑처럼 가파르다

 

 


 

시조 - 강상돈

 

 

얼음송이가 뿌려진 꽃밭을 걸어 갈 때

지나는 산들바람이 경계심을 늦추고

남몰래 보석 하나를 숨죽이며 캐낸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메밀꽃 잔상들이

머리를 풀어 헤친 소녀의 긴 머리처럼

마음껏 흩날리면서 온 세상을 누빈다

 

가식 없는 연기가 무대 위에 펼쳐지면

노을도 울컥 토해 가슴을 물들이고

노련한 연기자들의 대사도 물오른다

 

 


 

벽파항의 봄 김영란

 

 

죽어도 죽지 않는

이름을 불러본다

 

백의종군 그대가

살기 위해 뛰어든

 

검푸른 침묵의 바다

칼자루를 품는다

 

벼랑 끝 목숨들이

불안에 떨 때마다

 

진도사람 진한 연대

핏빛으로 일어선 곳

 

끝내는 모두 죽어서

영원히 살고 있는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2024 1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