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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돌과 바람 문학' 2024 가을호의 시(4)

by 김창집1 2024. 12. 31.

 

 

 

 

 

 

 

나무의 언어 이경열

 

 

빗줄기를 뚫고 온 예쁜 할머니,

미용실 의자에서 조용히

파마 종이를 정돈하고 신문을 읽지요

 

오늘은 길어진 머리로 젊을 때의 분위기를 보아요

그녀를 닮은 자매와 자주 만나

눈빛이 진주처럼 빛나요

 

흰머리가 세면서 너도나도 머리카락이 짧아지는데

팔순 넘은 언니는 머리카락이 긴 게 어울려요

파마할 때 졸음 한 가닥 아래로 당겨지고

 

기다리는 시간

오늘, 도움이 될 것이 있는지 그 자세만으로도

반짝여요

 

고요가 흐를 때

나무의 벽에 기대었던 책을 펼쳐 침묵 속에 잠긴 할머니

나무향기에 취해 숲속에서 산책하는 듯이

 

 


 

폭염 속에서 - 이영자

 

 

젖어있는 바닥에

미끄러져

깁스를 해보니 알겠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상 최대의

폭염과 불경기가

가슴을 짓누르지만

어디서든 한 박자

늦추어야 한다는 것을

 

시멘트 보도블록 틈새

잡초 속에 핀 노란 꽃망울이

날 반겨주는데..

 

불볕더위를 이겨낸

마당의 청사과와 단감은

가지가 휘도록

익어만 간다

 

 


 

절실하기에 피는 꽃 정석수

 

 

하늘을 보고 있는 꽃들은

비에 젖으며 저항하는

울분이어라

꽃받침과 줄기와 뿌리는

꽃잎을 위해 화려함을 버렸다.

 

사람들을 마주보는 꽃들은

부끄럼 없는

당당함

부끄러움은 내 몫이어야 한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피어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부지런

 

닮아 간다는 것은

나의 것을 모두 내려놓음

나의 부정이 삭아

물처럼 씻겨

낯선 나목을 받아들임

 

오늘이 아니면 그 언제쯤 기필코

 

쉽게 피어나면 꽃이라 웃을까?

금세 시들지 않으면 꽃이라 슬플까?

앨범 하기를 돌탑 쌓듯

하루하루 엮어간다.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를 미래

꽃이 피지 않아도 열리는 무화과처럼

절실해져야겠다.

 

 


 

후기

 

 

올 한 해도 말없이 저물어갑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너무도 실감나는 한해였습니다.

오늘하루 한 해를 잘 정리하시고

을사년의 뜨거운 태양을 맞아요, 우리

 

 

          *돌과바람문학회 간 돌과 바람 문학2024 가을호(통권 제1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