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을 세며 수를 배우다 - 문무병
나는 어렸을 때,
누나와 함께 밤하늘에 별을 세며
수를 배웠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별을 세는 셈법의 대상은
셀 수 없이 많은 별, 은하계의 별들을 보며,
자기가 셀 수 있는 별의 수를 잊지 않으려고
별을 세며, 세는 수만큼 내별을 세는
‘별 하나 나 하나 셈법’에서
나의 머리는 별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생각들, 무수히 많은 별 중 내가 세는 별의 수는
‘나의 별을 담는 그릇’에 담기지고
내가 보는 세상, 나의 우주가 만들어져 갔다.
명멸하는 별들 중 내가 센 별은 하늘의 별 수만큼
땅에는 나와 같은 존재[生命]가 되고,
하늘의 별의 수만큼 땅에는 사람이 살고
별이 지면, 지는 별 만큼 땅에는 사람도 죽었다.
지상의 별, 사람이 죽으면
지상에는 어미의 뱃속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별을 가리키며,
“저 별은 아빠별, 저 별은 엄마별, 저 별은 삼촌별,
저 별은 순동이 별, 저 별은 영자별……”하여
하늘의 별들에 주인을 정해 주었다.
하늘의 별들은 이승의 호적등본처럼
땅에는 생명을 키우게 되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자기의 별과 다른 별들을 관계 짓는
하늘의 별 이야기에는
하늘에서 귀양 와 마을의 본향당신(本鄕堂神)이 된
‘별공주 따님애기’의 신화와 함께
남방에서 들어온 사신칠성(蛇神七星) 이야기,
땅 칠성, ‘뱀과 용’으로 상징 되는
하늘의 별들의 세계를 땅 위에 건설하면서,
다산(多産), 수복(壽福)과 장수(長壽)의 수
7(七)의 관념을 만들었으며 ,
그 수의 체계는 한류로 분류되는
한민족(韓民族) 보편적인 관념체계
제주의 마을 본향당 신화이며 산육신(産育神) 신화인
일뤠할망(七日神) 신화
“하늘의 별공주가 귀양 와 마을의 본향당신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당신화가 생겨났다.
♧ 섞박지는 말한다 – 김항신
배추와 무가 만나
섞박섞박
부재료와 만나
맛있는 것을 완성하듯
맛깔나게
만들어 내듯
향그럽게 곰삭아 시원하게
목줄기 타 내려 씻기듯
시인은 말과 글의 요리사*
---
* 조선 TV 밤 9시 앵커의 말에서 인용.
♧ 폭설에 침잠(沈潛)하다 – 문상희
서럽다 치자면 한없이 서러운 것이
세상일 아니냐만 내 생에 가장 추운
날들* 많다
딱 하루짜리
막노동을 마치고
촌집에 왔다
폭설이다
길이 다 끊겼다
고립이다
雪길을 걷는데
아무리 正자로 걸어도
八자다
다시 연락이 올 때까지
허망하게 기다려야 한다
간절히
---
*샤이 라이츠(Chi-Lites)의 The coldest days my life라는 음악에서 차용.
♧ 없는 마음 - 서안나
사람이란 게 본디 무정하고 서늘한 것이라
없는 마음을
붙잡는
마음
아직 죽지 않은 것들이
냉장고 야채칸에서
무덤처럼 두 눈이 고요해지는 마음
두 사람이 심은
나무 그늘을 한 사람이 베어내는 마음
나무를 베어낸 마음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마음
소수민족처럼
사라지는 언어로
침몰을 말할 때
침몰이란 말 뒤에
껌처럼 달라붙은
가난하고 핏줄 같은 골목의 마음
무릎에서 털 돋은 늑대 인간이 걸어 나오는
마음
혼자 절벽을 세우고
아름다워지는
없는 마음
♧ 꿈 – 양동림
간밤에 아내가 물었다
한 20억쯤 있으면 오빠는 뭐 할래?
글쎄 한 10억으로 집을 사고
10억은 저축해두고
1년에 5천만 원씩 20년 동안
글만 쓰면서 살면 어떨까?
당신은 소설 쓰고
나는 시를 쓰며
간간이 찾아오는 사람들과
차 한 잔 나누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꿈이라
손 꼭 잡고 잠이 들었는데
쓰레기통에 로또 용지가
아침 햇살처럼 찢어져 있다
아내의 기침 소리가 흩어진다
하룻밤 새 아내의 얼굴이 수척해졌다
*제주작가회의 간 『제주작가』 2024 가을(통권제8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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