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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8)

by 김창집1 2025. 1. 2.

 

 

별을 세며 수를 배우다 - 문무병

 

 

나는 어렸을 때,

누나와 함께 밤하늘에 별을 세며

수를 배웠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별을 세는 셈법의 대상은

셀 수 없이 많은 별, 은하계의 별들을 보며,

자기가 셀 수 있는 별의 수를 잊지 않으려고

별을 세며, 세는 수만큼 내별을 세는

별 하나 나 하나 셈법에서

나의 머리는 별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생각들, 무수히 많은 별 중 내가 세는 별의 수는

나의 별을 담는 그릇에 담기지고

내가 보는 세상, 나의 우주가 만들어져 갔다.

명멸하는 별들 중 내가 센 별은 하늘의 별 수만큼

땅에는 나와 같은 존재[生命]가 되고,

하늘의 별의 수만큼 땅에는 사람이 살고

별이 지면, 지는 별 만큼 땅에는 사람도 죽었다.

지상의 별, 사람이 죽으면

지상에는 어미의 뱃속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별을 가리키며,

저 별은 아빠별, 저 별은 엄마별, 저 별은 삼촌별,

저 별은 순동이 별, 저 별은 영자별……하여

하늘의 별들에 주인을 정해 주었다.

하늘의 별들은 이승의 호적등본처럼

땅에는 생명을 키우게 되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자기의 별과 다른 별들을 관계 짓는

하늘의 별 이야기에는

하늘에서 귀양 와 마을의 본향당신(本鄕堂神)이 된

별공주 따님애기의 신화와 함께

남방에서 들어온 사신칠성(蛇神七星) 이야기,

땅 칠성, ‘뱀과 용으로 상징 되는

하늘의 별들의 세계를 땅 위에 건설하면서,

다산(多産), 수복(壽福)과 장수(長壽)의 수

7()의 관념을 만들었으며 ,

그 수의 체계는 한류로 분류되는

한민족(韓民族) 보편적인 관념체계

제주의 마을 본향당 신화이며 산육신(産育神) 신화인

일뤠할망(七日神) 신화

하늘의 별공주가 귀양 와 마을의 본향당신이 되었다.”

아름다운 당신화가 생겨났다.

 

 


 

섞박지는 말한다 김항신

 

 

배추와 무가 만나

섞박섞박

부재료와 만나

맛있는 것을 완성하듯

 

맛깔나게

만들어 내듯

 

향그럽게 곰삭아 시원하게

목줄기 타 내려 씻기듯

 

시인은 말과 글의 요리사*

 

---

* 조선 TV 9시 앵커의 말에서 인용.

 

 

 


 

폭설에 침잠(沈潛)하다 문상희

 

 

서럽다 치자면 한없이 서러운 것이

세상일 아니냐만 내 생에 가장 추운

날들* 많다

 

딱 하루짜리

막노동을 마치고

촌집에 왔다

폭설이다

길이 다 끊겼다

고립이다

 

길을 걷는데

아무리 자로 걸어도

자다

 

다시 연락이 올 때까지

허망하게 기다려야 한다

간절히

 

---

*샤이 라이츠(Chi-Lites)The coldest days my life라는 음악에서 차용.

 

 


 

없는 마음 - 서안나

 

 

사람이란 게 본디 무정하고 서늘한 것이라

 

없는 마음을

붙잡는

마음

 

아직 죽지 않은 것들이

냉장고 야채칸에서

무덤처럼 두 눈이 고요해지는 마음

 

두 사람이 심은

나무 그늘을 한 사람이 베어내는 마음

나무를 베어낸 마음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마음

 

소수민족처럼

사라지는 언어로

침몰을 말할 때

침몰이란 말 뒤에

껌처럼 달라붙은

가난하고 핏줄 같은 골목의 마음

 

무릎에서 털 돋은 늑대 인간이 걸어 나오는

마음

 

혼자 절벽을 세우고

아름다워지는

없는 마음

 

 


 

양동림

 

 

간밤에 아내가 물었다

20억쯤 있으면 오빠는 뭐 할래?

글쎄 한 10억으로 집을 사고

10억은 저축해두고

1년에 5천만 원씩 20년 동안

글만 쓰면서 살면 어떨까?

당신은 소설 쓰고

나는 시를 쓰며

간간이 찾아오는 사람들과

차 한 잔 나누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꿈이라

손 꼭 잡고 잠이 들었는데

쓰레기통에 로또 용지가

아침 햇살처럼 찢어져 있다

아내의 기침 소리가 흩어진다

하룻밤 새 아내의 얼굴이 수척해졌다

 

 

                  *제주작가회의 간 제주작가2024 가을(통권제8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