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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의 시(7)

by 김창집1 2025. 1. 10.

 

 

볕뉘

 

 

잠시 틈 사이에 머물던 볕뉘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이 되는 것처럼

 

나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 잠시 멈춘 때가 있었나

누구를 위해,

잠시 뒤를 돌아본 적이 있었는가

 

잠시 그늘에 미치던 볕뉘

그 자리에 민들레가 피어 있는 것처럼

 

나에게 대답한다

이제야 발아래 밟힌 들꽃을 보았다오

미처,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을 보지 못했다오

 

 


 

많은, 너무 많은

 

 

내속에

많은 나와

 

너무 많은

딴생각들

 

널브러진

겨울, , 바람

 

기다리지 못하는

, 아침,

 

 


 

불면증3

 

 

내겐

신이 준

마지막 선물인 망각도 받지 못하고

밤의 허리춤에 서 있다가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멈추었다.

 

 


 

포맷

 

 

  어느 날부터 인가 내 서재 컴퓨터가 느려졌다 무언가를 하려면 프로그램 작동이 되지 않는다 아니 이미 저장된 내 마음의 파일들은 불러올 수 없는 파일이라 호칭 된다 바이러스 때문일까? 백신 치료? 별짓을 다해 봤지만 좋아지질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나의 글자 부스러기를 더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애프터서비스 기간의 경과로 동네 닥터 PC의 도움을 요청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아예 포맷하시죠.” 원 상태로 복구할 수 없다면, 다시 필요한 프로그램을 깔고 사용하란다 싹 다 지우고, 필요한 것만 다시

 

  나도다시

 

 


 

엿듣다

 

 

줄줄이 스며든 빗물과

그렇게 내리쳤던 햇볕

바람결로 새겨진 얼룩과

눈발에 지친 껍질

 

칠십 여 사월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동네 어귀 폭낭

닭발처럼 찍힌 뿌리가

끝끝내

 

못다 한

인연들의

질긴 총성을

엿듣다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월간문학 출판부,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