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길도 바람 - 김대운
바람은 푸른 바다를 쓰다듬어
물결이 고요히 춤을 추네
어지러운 세상 피해 불어온 바람
세연정에서 서서
북쪽 산을 고요히 바라보니
산들바람 속에 한숨이 깃드네
솔바람 맞으며 갯돌 위를 걸으니
바다 향기는 따뜻해지고
물새 한 마리가 인사를 하네
자갈소리 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니
고산의 마음 내 가슴에 닿도다
벼랑 끝 바람결에 실려오는
간절한 소원들
가난도 부유함도 없는 이곳
바람 불어와 온기를 전하니
산은 푸르고 바다는 넉넉해지고
우리네 마음 따뜻해진다
♧ 귀암에서 가리다 – 김도경
천하를 등진 선비가
귀암* 에 올라 달을 맞았다는데
우주의 기운이 끊긴 심심산중은
한여름 밤 솔바람 기척에도
가슴이 무너졌겠다
심골에서 사시사철
눈보라가 휘몰아쳤겠다
하늘 우러를 수 없는 막막함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어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님 마중하며
잿빛 속내 은은해졌겠다
우렁우렁 울어대던 바다에
풍랑이 일었던 것이
연꽃봉우리를 펼치며
고산을 이끌었던 섬이
운명이 창작한 각본이라면
시나리오 퇴고는
작가의 소명
서릿발로 점철된 귀암에 올라
은유로 피는 시어 받아내며
하 수 한 수 노래 불렀겠다
한발 한발 내디디며
섭리에 따랐겠다
---
*귀암 :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서 달을 감상하던 완월(玩月) 장소 거북바위(龜巖).
♧ 몽돌 해변 – 김정희
어린 시절을 바다에서 찾았다
태풍영향권으로 세찬 파도가 밀려왔다
저렇게 오랜 시간에 몽돌은 둥그레졌을 것이다
몽돌몽돌 다듬어져 단단하고 부드러워진 몽돌
크고 작은 몽돌처럼 다녀간 시간이
밀려왔다 돌아서다 달려오는
저 으르렁거림으로 어른은 아이처럼 달려나온다
금세 바다의 조각들이 추억으로 날려온다
웃음이 몽돌처럼 둥글었고
해를 가리는 일조차 미안해서 양산을 쓰다 접다 눈치를 봤다
반생이 그렇게 노을처럼 물드는 시간
쌓아두었던 그리움을 풀어놓느라 바다는 거품까지 물었다
불은 꺼지지 않고 살아온 시간들과 밤을 보냈다
시간이 가는 줄 아무도 재지 않았다
목이 쉬어라 내 목소리를 전했고
추억만큼 몽돌을 주위 손에서 굴려가며
우린 맘껏 아이처럼 몽돌 위에 누워보기도 했다
♧ 스미다 – 김항신
보길도에 들어 세연정에 이르니
남생이 연못 생각나네
여기가 거긴지 거기가 여긴지
돌담 쌓고 가래 치던 장정들의 모습
어드메 있는지
고산의 발자취에 스미어 보네
이보게 문 선생 여기나 남생이나
그 가치의 세경은 그래도 주었지 싶지
않겠나 각설하고
곡수당 휘돌아 낙석재에 이르니
수목이 울창하여 산맥을 이루네
장대에 깃발 달고 격자봉 오르내려
산수가 수려하니 여기가 낙원이라
하늘이 하사한 곳이라 여겼거늘
탐라섬 닭ᄆᆞ루, 남생이 연못 또한 그
못지 않네
동천석실 부용동 한눈에 아름다워
윤선도가 애장하는 곳이라
보길면 중동리에 드니 ‘송시열 글씐 바위’에
임금에 서운함과 그리운 한시를 새김에
‘동국의’ 오언절구가 뭔 말인가
풍화와 해수에 씻기어 남은 흔적 微量(미량)에
천년 세월이 지나가네
풍류와 참선과 음류의 한시를 풍미하던
고산의 발자취
조상의 풍족함이 ‘윤선도’를 남겼으니
산세의 시련이나 고통은 족히 맛보지
못한
한 사람,
윤선도 문학관 들어 갯돌 해수욕장에
잠시
몽돌에 앉아 공기놀이 새겨보네
‘숙인 김해김씨 열녀비’에 잠시 눈
맞추며 그때의
내 마음에 물들어 봄도 있어라
더덕향에 취해보는 능선로길
미량 낭자 코 끝에 스미누나
白努(?)의 온기에 물들어보는 석양길
송시열의 ‘글씐 바위’ 길에 들어 잠시
*한라산문학회 간 『한라산, 보길도를 걷다』 (2024, 제37집)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과 바람 문학' 2024 가을호의 시(5) (0) | 2025.01.13 |
---|---|
계간 '제주작가' 2024 겨울호의 시(2) (0) | 2025.01.12 |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의 시(7) (0) | 2025.01.10 |
'혜향문학' 2024년 하반기호의 시(3) (0) | 2025.01.09 |
'애월문학' 2024 제15의 시조(7) (0) | 2025.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