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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9)

by 김창집1 2025. 1. 28.

 

 

마스크 1

 

 

마스크 쓰고 나서

시 한편 못 썼다

 

나를 지키기 위하여

너를 지키기 위하여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다

 

매장마다

마스크를 사려고

긴 줄이 생겼다

그 흔한 마스크가 동이 나서

사람들이 불만이다

 

정부가 나서서 말했다

지금은 길게 견뎌야 한다고

 

나를 지기기 위하여

우리를 지기기 위하여

길게 시를 접어야 했다

 

 


 

마스크 2

 

 

이젠 고향도 지웠다

그리운 사람도 지웠다

오가는 인정도 사라지고

독거만 남았다

학교도 회사도 시장도 사라지고

재택만 남았다

만남도 친선도 공유도 사라지고

방역만 남았다

 

이젠 시공을 지웠다

광장의 환호도 지웠다

지난날은 아스라이 사라지고

자판만 남았다

기차도 비행기도 도보도 사라지고

모니터만 남았다

동대문도 남대문도 에펠탑도 사라지고

스크린만 남았다

 

오늘의 스토리가 사라졌다

오늘의 노동도 서비스도 사라졌다

묵시만 남았다

프레임만 남았다

영화관도 경기장도 수영장도 사라지고

놀이방도 피시방도 카페도 사라지고

새로운 말들이 뜬다

새로운 도시가 아스라이 뜬다

 

 


 

증발

 

 

물이 차올라서

다리가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서로 맞닥뜨려

압사한 사람들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미사일이 날아와서

원자탄이 떨어져서

순식간에 사라진 사람들

누구 하나

애도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

총을 들지도 않았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누구 하나 파헤치지도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태원

 

 

불판에서 냄비가 끓었다

힙합 머리 러닝 바지

거울 속에 그가

폰을 들고 리듬을 탄다

 

거울 속에 그가

해 지는 유리창처럼 뜨겁다

너만 원해 내가 전해

멍멍이도 따라서 나댄다

 

오늘 밤은

톡톡 튀는 그녀를 만나

하입보이 춤을 추겠다고

그가 엄지척이다

 

땅거미 내리고

가로등 네온사인으로 환한 나라

자유를 뽐내는 민주주의 나라에서

거침없는 하입보이는 뜨거웠다

 

핫한 그가

핫한 그의 무리가

진격한다 취향의 그 시간 그 자리로

거침없는 하입보이는 뜨거웠다

 

 

                        *최기종 시집 만나자(문학들,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