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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의 시(5)

by 김창집1 2023. 11. 5.

 

 

개자리풀에도 노란 꽃은 피었습니다만, - 김정순

 

 

열 마지기 밭에 평생 골갱이로 일하며

풀만 뜯던 어머니는 그믐달처럼 쪼그라든 백 살 다리로

오늘도 마당 텃밭 가운데 옹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베체기, 생개, 소엥이, 난생이

익숙한 풀이름을 중얼거리며 말입니다

 

43 바람이 부는 날

나비처럼 아버지 따라나서지 못한 그날을

어머니 후회하셨잖아요

어머니 한숨은 골풀을 키웠고 골풀이 자라면서

눈가의 눈물은 질경이처럼 마당 가득

푸르렀어요

 

모란도 화려한 부용화도 멀리 산 너머 남촌에

있는 거라고

어머니는 나를 달래주셨어요

 

까맣게 흐르는 밤

철부지 비린내 나는 콩들은

언제쯤 어른이 될까 하면서요

흰 모래 위에서 필 때도 질 때도 요란함이 없는

번행초처럼 없는 듯 살라 하셨습니다

 

땅 위를 기면서 자라던 개자리풀에도 노란 꽃은 피었습니다만,

 

 

 

 

곡두 - 김진숙

 

 

오름 너머 오름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무자년 계절 속으로 마중 가는 사람들

그 뒤를 무턱대고 따라나선 날은

자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곤 한다

제주조릿대 서걱서걱 헤치며 나아갈 때마다

다급히 어디선가 쫓기는 발소리에

놀란 노루처럼 내가 사라지기도 한다

 

증언의 억새밭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어나무 사람주나무 침묵으로 결집한 나무들

제주 땅 어디서나 상처 없는 나무가 없다는데

죽음도 수습 못한 뉘 아비의 무덤을 찾다가

까마귀 울음조차 말라가는 서중천 물길을 따라

벼랑에서 쏘아대는 총성을 들은 것도 같다

 

사람이 살았다는 집 자리와 밭 자리마다

누군가를 겨누었던 녹슨 탄피와 탄두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부러진 숟가락 옆에

바위 같은 사내가 웅크리고 앉아있는지

깨진 사발, 깨진 항아리를 어루만지면

숯덩이처럼 불 지펴오는 저릿한 기억이 있어

옛사람 마중하는 마중물 사람들

그때 그 산을 마중하러 산을 또 오른다

 

오늘, 나는 무엇을 마중할 것인가

 

 

 

 

사월의 시 김항신

 

 

어느 날 내 귀에 서성대던 그 말

사월이면 마음이 시리고 춥다는 말

사월은 잔인한 달, 이라는 어른들의 말

 

내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슬픈 통각기痛覺器들이

역사적 기록에 쓰일 행적들이

아직도 술렁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 무고함에

민간인들이 무더기로 덮이고

화양연화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그때의 43을 읽는다

 

! 피부로 느껴지는 아픔들이……

 

 

 

 

나기철

 

 

살던 집

문 닫히고

 

제주 바다 하얗다

 

청천강 옆 마을로

날아가신

어머니

 

 

 

 

43운동은 제주의 명동 칠성골서부터 문무병

 

 

제주의 명동은 칠성골

서울의 명동은 70년대 낭만의 거리,

베트남의 명동, 하노이도 미래의 한류

천오백 만 인구에 천만 대의 오토바이 달리는 청춘의 거리에서

제주에 돌아와 외쳤다

나이 일흔셋에, “활빈당 허쿠다

두령청한외침이었다

스물두 살에 골빈당을 결성

50년을 향수했으니, 여러분 이제는,

이제는,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여러분 믿고,

활빈당 허쿠다

마지막 낭만스러운 반짝 모임에서 힘 다해

, 힘없어도, 외쳐 보았다

202314, 새로 합류한 시인들을 위해

2023년 새 날을 설계하며

오랜만에 낭만을 피웠다

낭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고해지는 거라고

낭만 시인들에게 외쳤다

, 다들 갑시다

 

 

          *제주43 75주년 추념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