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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조(2)

by 김창집1 2023. 11. 6.

 

 

 

이 친구란 말 - 조한일

 

 

형님, 동생 하다가

난데없이 친구 됐다

 

기분 좀

틀어졌다고

나이 차이 많이 나도

 

이 친구,

정말 안 되겠네

더 가까워진

우리 사이

 

 

 

 

추사의 진눈깨비 3 - 한희정

    -동지 무렵

 

 

갈필 닮은 추녀 끝에

어둠이 힘을 모으네

 

낫에 잘린 수선화

그 향기도 품에 넣어

 

한순간

비백을 친다

동짓밤이 가볍다

 

 

 

 

시 할인 합니다 - 김영란

 

 

굳이 살건 없어도 에누리질 흥정질

습관처럼 손꼽으며 기다리는 오일장

넘치는 인심 속에서 골목은 더 환해진다

 

좌판 없이 맨 바닥에 비료포대 말아 꺾어

푸성귀 펼쳐 놓고 날 부르는 할망들

그 앞에 오종종 세운 봉지들은 무얼까

 

누런 박스 귀퉁이에 삐뚤빼뚤 작은 글씨

어디서부터 읽어야할까, 머뭇대는 그 사이

텃밭에 푸른 시들을 한 가득 내오신다

 

시금치시 고추시 호박시 상추시

시 할인 들어간다는, 할망의 푸른 시들

밤새 쓴 나의 시들은 꺼내지도 못했다

 

 

 

 

조천사람이우다 김정숙

 

 

은근 도드라지게

앞장서던

버릇이우다

 

바위에 올린 뿌리

뿌리를 내린 바위

 

해탈한

교래곶자왈에

옹이로 사는

저 얼굴

 

 

 

 

천제연(天帝淵) 폭포 - 오영호

 

 

한 번도 모자라서 3단으로 떨어지는 것은

세상이 요지경이라 눈 감고 있지 않고

너와 나 무딘 혼 깨워 바른 소리 하라는

 

칠선녀 멱을 감고 천상으로 올라가버린

전설의 맑은 물엔 질곡의 아픔도 고여

흐르는 은빛 물소리에 내 귀가 먹먹하다

 

구천 길 맴을 도는 원혼들* 신원하는

절벽 솔잎난이 향기 풀어 닦은 길에

호오익, 짹짹 찌르르 새소리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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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때 중문에서 희생된 786

 

 

* 제주작가회의 편 계간 제주작가2023년 가을호에서

* 사진 : 가을 열매들. 차례로 천남성, 작살나무, 말오줌때, 참회나무, 누리장나무, 꾸지뽕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