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의 시(11)

by 김창집1 2025. 2. 20.

 

 

떨림1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어야

라는 탄성이 남몰래 튀어나오듯이

박물관에 있는 것보다

보잘것없는 구렁에, 볼품없는 산정에 놓여 있는 것들을 보았을 때 가슴

이 뛴다

 

있어야 할 그 때 있어야

라는 언어의 부족함을 토해내듯이

철없이 피어대는 꽃들보다

계절 따라 피는 것들에게서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본다

 

더욱이

그 때 그 곳이라면 어떨까

들어오는

눈 감은 생각만으로도 황홀한 흔들림이 덜컹거린다

 

 


 

떨림2

 

 

지난해 봄 갔던 곳

올 봄에 들렀더니

그 사이 무척이나 변했다, 여기저기

 

10년 전 여름에 갔던 곳

찾아갔더니

강산이 변한 것처럼 달라졌다, 몇 곳만 남겨두고

 

20년 전 가을에 갔던 곳

콕 찍어 갔더니

이제는 아예 그 자취도 사라졌다, 새로운 곳처럼

 

30년 후 겨울에

별생각 없이 지나치다

마주친 곳, ‘그대로네

 

그 때는 돌아올 수 없지만

그대로인 그런 곳에서

서성이는 나, 생각만으로도 황홀한 흔들림이 덜컹거린다

 

 

*비양도 코끼리 바위


 

비양*, 그곳은

 

 

바람을 가르고

파도가 모이는 섬, 비양

 

코끼리 바위 등판은 한여름도

눈 덮인 만년설, 새들과의 동거

 

지나치는 마을의 돌담은

거친 파도를 이겨낸 모습 그대로, 둥글다

 

썰물 때만 그 길을 내어주는 노란 등대는

비양의 속살 그대로, 수줍다

 

나가기 싫은 듯 머무는 바다

펄랑못 염습지, 하늘과의 동거

 

비양도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대륙, 제주섬

 

---

* 비양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挾才里)에 딸린 섬이자 오름.

 

 

 

 

수선화

 

 

제주대학병원 3병동 ×××호실

형수가 병원에 입원을 했단다

“3병동 ×××호실이 어디죠

안내인의 얼굴이 금세 굳어진다

“3……, -병도-……

순간 나에게 떠오르는 건 어머니였다

그리고 수선화 꽃이었다

수선화 향기였다 아니 수선화 냄새가 맞다

암 투병의 진한 기운이 가득했을 때

한 쪽 유리컵 가득 꽂혀진 수선화 무더기, 수선화 냄새

암 덩어리의 썩은 물을 토해 역함이 눌러 붙은

방 안 구석에 수선화는 그렇게 자신을 내보이고 있었다

나는 나를 탄생시킨 썩어가는 몸을 멀리하지만

나의 모든 감각기관이 부정되기를 바라지만

동물적 본능도 없고 인간적 정리도 없는

무더기 수선화는 향기를 피웠다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아들을 숨 쉬게 했다

그런 수선화가 오늘 내 눈 앞에 다시 선다

내 마음속 멍에가 퉁탕거리며 명하니 선다

 

 

*양하 꽃


 

양엣간*

 

 

사각진 내 밥상에 놓인 니

달빛 기다리는 울담 밑에서

낙수 떨어지는 처마 밑에서

제 본분 다하려

치장도 하지 않은 채

곧장 뿌리 에서 솟는 꽃줄기

그 순박함이여!

 

---

* 양엣간 : 양에(표준어는 양하)의 땅속줄기에서 솟아나는 죽순 비슷한 꽃이삭의 제주어로, 빗물 등이 땅을 파는 것을 막기 위해 울타리나 처마 밑에 심었음.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월간문학 출판부, 2024)에서

 

 

*양하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