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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5. 2. 22.

 

 

눈꽃 2유정남

 

 

규화*가 별빛으로 떠나자

눈꽃 맞은 2월호가 왔다

 

모지母誌의 영결식이었을까

 

국화꽃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검은 옷 사이

입가에 붉은 양념 묻힌 종이 밥그릇이 부푼다

 

이슬 취한 시인을 거리에서 본다

 

선생님 슬픔이 너무 길어요

넘치잖아요, 끊어요

 

그는 이미 손이 없다

 

시인들은 쉽게 버려진다

전화선 타고 온 바람이 고아를 뒤적거린다

 

원하는 대로 문장을 바꿀까요

로즈핑크로 입술을 적실까요

 

표정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답장이 온다

 

녹색 창을 켜고 웃는 법을 검색한다

입보다 볼이 웃어야 예쁩니다

거울 앞에서 웃다가

내 볼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불빛 새 나오는 카페

카멜레온들이 우글거린다

 

2월의 페이지를 연다, 눈꽃이 번진다

 

---

*고 김규화 시인.

 

 


 

어느 음악회가 있던 날 이윤진

 

 

바이올린, 첼로 소리에 맞춰 주위는 어두워지고

그랜드피아노의 부드러운 물결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춘다

빠른 리듬에 맞춘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감미로운 음률에

터질 것 같은 박수 소리

연주를 위한 짧은 휴식은

정신으로부터 독립일까

 

연주를 듣는 동안 꿈을 꾸었을 그대

아름다운 순간을 이어 주고

극치에서의 날개를 펼치게 하여 준

재치 있는 연주자들이여

드높은 별의 징검다리를

한 계단씩 한 계단씩 높이고 있다

 

기쁨이 함께 치솟는다

참 운수 좋은 날이다

 

 


 

홍시 - 이학균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절로 붉어지는

 

어딘가로 떠날 듯

말없이 항상 고개 숙인

 

얼굴,

그대 향한 사랑

 

감출 수 없을 만큼 뜨거워져

 

꽃처럼 터진 심장

가을이 흠뻑 젖는다

 

 


 

결연한 의지 이화인

 

 

결연한 의지 앞에서 잔돌 하나 화살이 되고

풀잎 하나도 칼이 된다

 

결연한 의지 앞에서 꽃송이도 포탄이 되고

꽃바람에도 생살을 베인다

 

자벌레를 보라

 

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 자벌레를 보라

온종일 하루치가 자가웃이다.

 

 


 

옷걸이 이범철

 

 

방문을 쿵, 닫으며 들어서다 혼자 벽에 걸린 옷걸이가

가만히 흔들리고 있음을 본다

봄바람에 작은 이파리 몸을 떨 듯

나를 반기는 그녀에게 몸을 벗어 맡겼다 그녀는

세상의 길에서 만난 온갖 냄새와 바람과 비에 젖은

옷을 받아 어깨를 다잡고 것을 세운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쓸쓸한 나를 반기며

외로운 시간을 견디었을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악수를 먼저 내밀 듯

몸을 흔들어 주는 것이다

피로와 좌절로 쳐진 어깨를 다시 잡고

세상 무게에 눌려 굽은 등을 곧게 펴 벽에 눕히고 나의

세상에서 만난 냄새 개의치 않고 옷을 받아 든 그녀에게

몸을 맡긴 채 안식의 공기를 마시는 몸이 나간 나의 옷

내 몸보다 편한 자세로 빈 팔을 펴고 있다

나의 밖을 잠그듯 걸린 옷 단추를 채워 주며

오늘은 그녀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

지친 내 몸에 눈길 그윽한 그녀에게

나는 오늘 밤 그녀 몸에 걸린 나의 빈 몸을 풀어 벗고

벽에서 내려와, 내 옆 빈자리에 나란히 눕히고 싶다

 

 

                       *월간 우리2월호(통권 제44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