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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2024 겨울호의 시(6)

by 김창집1 2025. 2. 23.

 

 

제주도의 시간 강덕환

 

 

기뻐해 주십시오

드디어 제주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지단 수년 동안의 세월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저들만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시간입니다

어떤 시설이 들어오고, 언제 완공되는지

면적이 어떻고, 소요 예산이 어떻고

수용당하는 주민들의 토지보상비가

적정한지 모릅니다만

지금의 제주국제공항과 별도로 성산읍에

새 공항을 짓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요, 새 공항을 지어

새도 비행기를 타고 다녀야지죠

 

그런데, 웬걸

새를 쫓아내는 공항입니다

새가 맘껏 날아다니는 공항이 아니라

쇠가, 쇳덩이가 날아다니는 공항입니다

저들 맘대로 선을 그이 재단하고

대체 서식지도 없이

새의 등지를 없애고

숨골을 막아 숨통을 조이는

발파와 굉음의 공정으로

본격 진입합니다

 

환경영향평가, 기본계획 고시

이것이 제주도가 맞게 될 시간이랍니다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우리들의 결정권을 획득하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새의 서식지가 사라지듯

이익 극대화에 헛물켜다 보면

기뻐할 새도 없이

제주도의 시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참고하세요, 새는 둥지를 잃으면

쇳덩이에 온몸으로 날아가 부딪쳐 버린대요

 

 


 

요가 하는 고양이 강동완

 

 

가로등 불빛 속에서 고양이가 요가를 한다

아니 죽음을 넘기 위해 고양이가 요가를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깜박거리는 백열등처럼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간절한 꿈은 아이들에겐 몰핀 같았다

캣맘들의 지도아래 고양이들은 일제히 춤을 추었다

고양이의 요가는 구름의 움직임 같았다

꽃이 피어날 때 내는 소리다

고양이의 요가는 그 공원을 지나가는 우울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다

앞발을 쭉 내밀고 허리를 펴면서 엉덩이를 부드럽게 빼고

고양이의 자세는 늘 단단하고 아름다웠다

 

엄마는 저녁마다 달빛이 비치면 고양이로 변해 고양이들과 어두운 풀숲에서 요가를 했다 요가를 하는 엄마의 몸은 단단한 그늘을 만들어냈다

 

캣맘들이 어두운 저녁 놓고 간 먹이에 대한 고양이의 진심은 명상에 가깝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깊은 잠이고 가장 극적인 고요를 만들어내는 태풍의 눈이다

폭염속 차가운 그늘이고

꽃이 지면서 내는 가냘픈 숨소리다

 

고양이들이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 길거리의 고양이 노숙자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따뜻한 주인의 품속으로 돌아가거나

또 다른 별로 떠나가거나

중성화 수술을 하거나

아니면 길거리에서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일찍 떠난 죽음이 반드시 불행하다고 말할 수 없지

고양이 에게 요가란 내 두 눈에 흐르는 멈추지 않는 눈물이다

그저 행복의 눈물이었으면 하지

누군가의 거칠고 따뜻한 손등이었으면 하지

 

난 다시 요가란 것을 둥글게 뭉쳐서 엄마에게 던진다

다시 아름답게, 아픈 엄마 춤을 춰봐

 

 


 

학습 고영숙

 

 

원래는

동물의 것이었다

 

물고 물리는

겁먹은 인간들이

 

재빨리 습득하는

 

대가리, 눈깔, 이빨, 주둥이, 아가리, 모가지, 뼈다귀, 새끼

 

허기가

질수록

 

횟수가

늘어나고

 

꼬리는 길어진다

 

 


 

풍신수길의 묘에서 김경훈

    - 2018

 

 

풍국신사 입구에서 일직선으로 쭉 뻗은

풍신수길의 묘비로 가는 길

20계단 위 신사 정문으로 올라가

직선으로 또 33계단

그 계단 밟고 올라서면 320계단 헉헉 지나면 중문

거길 지나 가파른 계단 171개를 에이, 씨발!”

또 밟고 올라가면 드디어

풍신수길의 거대한 묘비가 턱 버티어 서 있다

왜놈 새끼, 죽어도 개고생 시키네

가래침 퉤 뱉고 돌상석 앞에 시원하게 오줌을 갈긴다

고개들어 하늘 보니 일본 까마귀 두 마리

노려보듯 선회하며 깍깍 기미가요를 부르고 있다

그놈들 너머 제국의 침략 태양의 일장기 향해

다시 한 번 가래침을 돋궈 칵칵 뱉어냈다

 

 


 

한라산 갑주 김광렬

 

 

한라산 성판악 거쳐 진달래밭 대피소 가는 돌밭 길,

나무 한 그루 갑주(甲胄)같은 껍질기둥으로 서 있다

한 몇 백 년 세월 알 수 없는 마법을 부리며

바람이 야금야금 파먹어버린 속살들,

박제하기 위해 내용물을 제거한 동물처럼 안이 비었다

내가 그곳을 지나가던 그날도

더 파먹을 그 무엇이 있다고 바람은 짓쳐와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는 해괴한 주문을 외며

속살 한 점 남기지 않고 끝까지 파먹고 말겠다는 듯

걸신들린 주술사처럼 아귀아귀 파먹을 때

나무는 괴로워서 쉴 새 없이 웅 웅 비명을 질러댔다

제우스 신전의 불을 훔쳐다 인류에게 나눠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의 진절머리 나게 반복되는 그 고통처럼

죽은 나뭇가지에서 피 흘리며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들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마는

그런데도 이대로는 무너질 수 없다는 듯

그 나무, 이를 악물고 껍질기둥으로 버터 서 있다

그 나무, 썩은 육신을 끌어안고 정신으로 버텨 나간다

그 나무를 보면서 나는 조금씩 그 나무를 닮아간다

 

 

                       *계간 제주작가2024 겨울호(통권 제8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