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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5. 5. 1.

 

 

가는 봄 오는 봄 윤수호

 

 

산허리 녹은 물로 맑게 거른 계곡이

부드러운 노래를 빚네

겨우 기지개를 켠 숲에게

갈증 풀어주라 졸졸 속삭이지

훈풍을 품은 네 활개 냉이가

납작하게 몸을 품었네

흰 꽃 쫑알쫑알 웃으려거든

아지랑이가 서둘러야 해

 

나비를 부른 장다리는

좀이 쑤시지

벌써 청보리 세상이야

솜털 삘기 따라 언덕을 넘는 파도는

짙어가는 꽃 자주 해당화

눈 맞출 겨를도 없이 등을 돌리기도 해

가지마다 물오른 향기 몽땅 흔들어

꿀단지 바겐세일을 시작했네

 

 


 

떡국 한 그릇 이규홍

 

 

설날이라고

아내가 떡국 상을 차렸다

떡국에 만두 두어 개 들어 있으니

떡만둣국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

멀리 하도에 가 있는 첫째, 둘째

군에 가 있는 막등이 셋째

얘들은 떡국 생각이나 할까

아내와 둘이 겸상 아닌 겸상을 하며

돌아가신 부모님은 그렇다손 쳐도

다른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가셨나요

설날 대목에도 보지 못한다면

삼백육십오일 언제 따로 만날 날 있을까

설날 아침에 눈발이 날린다

날씨도 춥지 않은데

떡국 든 숟가락이 파르르 떨린다

먹어도 줄지 않는 떡국 한 그릇

 

 


 

명필 - 이산

   -유천 이동익 선생님

 

 

백송터는

추사의 묵향으로 생동한다

 

반백년을 적재한 붓끝이

마음의 음표를 따라

거침없이 질주하다 우뚝 서고

솟구치는 듯 낙하하며

장중한 광개토왕비의 발자국을 따라

뽕잎을 먹는 누에의 탄성을 변주한다

 

중심은 꼿꼿하여

획과 여백은 한 치의 빈틈이 없다

 

신운神韻이 감도는 글 숲

검박한 댓잎으로

담금질한 무수한 시간이 깃들고

고결한 묵향이 돋아나

견고한 뜻을 관통하는 붓으로 세우는 축조물!

 

그곳에

유천攸川이 있다

 

 

 

 

이영란

 

 

초콜릿 반 우유 반

아이스크림을 끓이자

 

가스레인지는 타오르지 않게

 

내가 어제 한 말 기억해?

방문을 잠그고 책상에 엎드려 봐

 

풀리지 않는 것은 찢어버려

우리에게 날개가 있다면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일까

 

옥상 난간에 앉아 있는 우리

오랫동안 말이 없고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으면

구름이 지나갈 거야

 

키보드를 두드려볼까

 

하나, 아이스크림 맛있게 먹는 방법

, 날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

 

우리가

 

창밖으로 날아갈 때까지

 

 


 

서도역 - 임미리

 

 

여기는 유산이 된 폐역입니다.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곳

음악 소리에 다리를 흔들며 느린 오후를 생산합니다.

낢은 역사에 앉아 망각의 시간이 흘러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 바닥에는 울지 않는 기적 소리 뜨거워집니다

안주하고 싶었던 방랑의 날들

새로운 날이 기적처럼 와 준다면

환대할 것만 같은 생각은 솟구치는 망상이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은 뼛속까지 파고드는데

세상은 매화 환하게 핀 봄날이랍니다.

꽃과 꽃 사이에서 바람과 바람이 조바심을 냅니다.

창백한 병상의 시간은 하심의 나날들이었기에

아련해도 비밀스럽게 간직했었는데

밀쳐 낼 틈도 없이

새싹처럼 뚫고 올라와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합니다.

모멸감으로 시작되는 봄날의 향기는

가쁜 숨소리처럼 애절하게 나뒹굽니다.

오래된 소문을 침목에 눌러 묻으니

헐벗은 벚나무에 햇살이 걸려 물구나무를 섭니다.

머지않아 서로에게 전부였을 시간이 펼쳐지고

벚꽃처럼 하얗게 피어날 것을 기약해 봅니다.

취하지 못했던 흔한 날들은 감히 내려놓습니다.

 

 


 

소풍 장성호

 

 

그대들은 저의 귀한 손님들입니다

 

자운봉아 우리들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소풍 왔다가 집으로 간다네

 

아 그대들이 함께 있어 주어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곧 떠나신다니 정말 아쉽습니다

 

자운봉아 그간 고마웠네

 

떠날 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더라도

용서해 주길 바라네

 

저기 도봉산 자운봉에

잔설이 서서히 녹고 있다

 

 

                          * 월간 우리2025. 4월호(통권 제44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