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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5. 6. 16.

 

 

살다 보면 여연

 

 

깊이 잠긴 계단을 오를 때 있다

파도가 내 발목을 묻을 때

물결이 입을 벌릴 때마다

침식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닻은 침묵의 서약

찢긴 돛은 상처의 붕대

나침반이 바늘 끝에 서 있듯

모래시계 속 모래알 하나가

바람의 척추를 세운다

 

밀물이 씻어 낸 발자국들 아래

굳은 따개비의 속삭임은

고통을 이겨 낸 승리의 노래

파도가 부서진 자리

조각난 유리처럼 박혀도

미지의 등대로 향할 예정

 

지평선은 끊기지 않는 실타래

한 올 한 올 풀리며

새로운 바다를 꿰어 맨다

 

 


 

동백꽃 위인환

 

 

얼음장 같은 그녀

토라지면 금이 가고

눈이 내렸다

 

돌부처 같아서

얼어붙는 줄 모르고

외길만 걸었던 나

 

담금질된 노동

봄바람 일으키는 풀무질에

고드름처럼 녹아내린 용접봉

 

엄동에 피운 불꽃

새색씨 볼에 곤지처럼

붉다

 

 

 

마당을 쓴다 이기헌

 

 

기분이 우울할 때는

마당을 쓴다

온갖 번민을 내려놓고

흐트러진 앞마당을 쓴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맥없이 누워 있을 수만은 없다

축 처진 몸을 일으켜서

빗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간다

정신을 가다듬고 힘차게

빗자루질을 한다

 

마당을 쓸고 또 쓸면

머릿속에 드넓은 광야가 펼쳐진다

얽힌 마음 저 언저리로

상큼한 푸른 빛이 쏟아진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마당을 쓴다

 

 

 

 

함평 이동열

 

 

문장이 따뜻하게

미소가 보고 싶어집니다

카페에서 시스터를 보았다는 왠지

시스터디에는 누나가 없고

 

오그라진 손을 잡아 주고

솔기가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흥건한 웃음만은 지우지 않습니다

 

방망이질이 끝나고서야 문장을 헹궈 널고

멍을 쓰다듬습니다 뭐로 때렸지

때려 달란다고 꽉 쥔 주먹으로

마음 놓고 때리는

 

담금질을 믿어야 합니까

빵은 우걱우걱 씹어 먹어도 단맛뿐이고

조금씩 마셔도 커피에서는 쓴맛이 나요

시스터의 얼굴에 딱 어울리는 맛입니다

 

나도 멍든 미소 몇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시스터의

흔적입니다

 

너덜거린 웃음을 데리고도 원+원 하는

빵을 삽니다 그중 하나는

시가 될까요

공짜로 얻은

 

공갈빵 속으로

들어갑니다

 

 

 

꽃밥 제갈양

 

 

누군가 슬픔을 녹여 꽃밥을 지었다

 

그 눅진한 밥상 앞에서 한 술도 뜨지 못한 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밥알 몇 개 입에 넣으니

쓰고 시고 짠 것들이 녹아나는데

 

그것들이 섞여 달달해진다는 것을

날마다 밥상을 받으면서도 몰랐네

 

 

                           *월간 우리시 20256월호(통권 44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