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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광석 시집 '귓속의 이야기'의 시(1)

by 김창집1 2025. 6. 19.

 

 

시인의 말

 

 

오늘 저녁에는 라면을 끊였다

대파를 한주먹 넣고 먹었다

 

국가는 국민의 것이며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이 깨지지 않기를

 

국가 권력에 희생된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254

                   대통령 탄핵 선고 전날이자 제주 43추념일

                                                                         오광석

 

 

 

 

시오름의 봄

 

 

한겨울 땅속 깊은 자리

응어리진 혈

실금 같은 햇살에 녹아 올라온다

 

붉은 동백꽃으로 핀다

 

 


 

청문회

 

 

모릅니다

제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누가 여기에 앉혔는지

아는 게 없습니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먹고

받는 만큼 사례하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뛰어서

뛰는 만큼 챙겨놓고

되는 대로 긁어모아

눈치껏 살아온 거 빼고는

저는 모릅니다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바보가 되라 했습니다

 

 

 

 

계엄령

 

 

아니에요

총은 그저 장식품이에요

쏘지 않을 총을 들고 다닌 거예요

군홧발 소리 안 나도록

살금살금 걸었어요

미리 짜둔 각본대로

헬기 타고 버스 타고

조용히 이루려고 한 거예요

시민들의 곤한 잠

깨울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얼른 끝내고

새로운 아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두가 일어났을 때

붉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게 하고 싶었어요

협의와 표결 대신

저의 위엄으로 이루는 나라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니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나비

 

 

전직신청서를 보낸 후

12층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꽃 그림 바탕화면 모니터 위에

나비가 날아와 앉는다

높은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나비도 도시에 익숙해져

승강기를 타고 올라온 걸까

생화 한 송이 없는 공간

자리 잡은 나비

어찌 살아가야 하나

날개가 점점 처져 내려간다

어린 딸아이가 떠오른다

나비를 보여주고 싶어

높은 아파트들과 아스팔트 위

달리는 자동차만 보이는 공간

처진 어깨로 살아온 날들

꽃밭에서 자라야 할 아이들이

활짝 꽃 웃음을 피워야 할 아이들이

늘 학원 뺑뺑이에 시달려

집으로 들어오는 모양이

꽃밭을 찾지 못해 말라가는

나비를 닮아 있다

바탕화면 꽃 그림처럼

자리에 박혀 있는 난

꽃을 키우는 곳을 찾아가려

자리를 정리한다

 

 

                *오광석 시집 귓속의 이야기(도서출판 북인,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