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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시(7)

by 김창집1 2025. 6. 21.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은 등 뒤에 서 있었다

 

  시래기 엮듯 포승에 묶여 서 있는 사람들, 절망의 깊이만큼 굽은 허리, 노상 암청색인 거친오름 하늘로 바람까마귀 한 무리 불안하게 날고

 

  흐릿한 그림자 하나 고개 들어 뒤를 본다

 

  뿌리 약한 나무 낯선 바람에 떨고 있다

 

  살아 있어 불안한 눈빛 그리움에 흔들려 꿈인 듯 생시인 듯 대명천지 눈부신 햇살 찌르듯 파고들어 소리 없는 비명이다

 

  등 뒤로 멀어져가며

  나를 보는

  슬픈

  눈

 

 


 

밀라이*

 

  담배 좀 다오

  담배 좀 다오

  피 냄새!

  살 수가 없어

 

  한 모금 담배 연기에 쿨럭거리면서도 할머니는 계속 담배를 찾으신다 우리는 둥그렇게 둘러서서 담배를 붙였다 볼우물 깊게 패이도록 빨아들여 할머니에게 연기를 불어드렸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구나

  비린내

  가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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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에서의 미국전쟁 당시 미군이 집단학살을 자행했던 베트남의 시골마을 이름

 

 


 

베트남 피에타*

 

 

아직도 흘려야 할

눈물이 남았을까

 

깊고 좁은 구덩이에

말라붙은 눈물자국

 

어미의 자장가 소리

그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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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피에타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 김서경, 김운성의 작품으로 한베평화재단에서 베트남과 한국 곳곳에 세웠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도 세워져 있다.

 

 


 

슬픈 자장가

 

 

아가야 이 말을, 이 말을 기억하거라

수많은 제주사람을 제주의 젊은이들을

우리의 경찰이 우리의 군인이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제주 땅 그 어디를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다랑쉬 곶자왈 옴팡밭 정뜨르 너븐숭이 터진목 광치기 해변 빌레못동굴 하귀 어음 금악 대정 안덕 서귀포 성산 표선 조천 함덕 선흘 성안

아가야 잊어선 안 된다

네가 밟는 땅 할아비 피를

 

아가야 잊지 말거라 자면서도 기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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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전해오는 자장가 차용

 

 


 

고엽제

 

 

  물방울도 아닌 것이 숲 하나를 삼켰어

 

  저주받은 초록들이 땅에서 사라져 아내가 아이 낳자 제일 먼저 물었어 손가락 발가락 모두 다 온전해? 첫 아이 태어나 한 달 만에 죽었고 둘째는 정신 지체 셋째는 차마 무서워…… 머리 둘인…… 눈코 없는…… 팔다리 오그라든…… 머리통이 몸 두 배인…… 손가락이 발가락 같은…… 팔다리 짐승처럼 짧은…… 그마저 얼마 못 살고 비명에 간 아이……

 

  죽어도 살아야 했어

  희미한 딸랑이 소리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