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5. 6. 22.

 

 

몽탁 선생 대화기 이동훈

 

 

동물과 대화하는 둘리틀 선생

동물 앞에 맨손을 펴 보이는 건

경계심을 풀게 하고 말문을 틔우는 요령이다.

 

어쩌다 식물의 말을 알아듣게 된 몽탁 선생

경계를 만들거나 지우거나 특별히 애쓸 일도 없이

발 가는 대로 말도 넘나든다.

 

마침, 새 신발 신은 몽탁 선생

평소 가족 같은 가죽나무에게 갔더니

신발코가 반질반질한 것이 가죽신이 아니냐고 묻는다.

동물 가족을 위해서라도 가죽은 곤란하지 않겠냐는

몽탁 선생 대꾸에

가죽나무가 기특하다며 이파리 훑어가서 장아찌라도 담그란다.

 

가죽나무 그늘 끝자락, 까마중도 한마디 거든다.

몽탁 선생 센스가 이만한지 몰랐더니

때 타지 않게 까만색을 잘도 골랐단다.

옆의 강아지풀을 그러쥐고 남의 신발까지 털어 주려는 걸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몽탁 선생은 발을 뺀다.

 

새 신을 신고 폴짝, 골목 끝 구기자나무 아래 갔더니

인상 펴고 살림 펴고 그렇게 펴고 살면 좋지만

몽탁 선생 정도면 신발은 구겨 신어도 폼 난단다.

신발 공장 망하지 않도록 신발을 너무 아껴 신지 말라는

구기자나무의 어록을 받아 적으며

몽탁 선생은 발로 맨땅을 차고도 웃는 얼굴이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다시, 가죽나무 아래

가죽나무 말인즉 둘리틀 선생도 의심스럽긴 하지만

몽탁 선생이 식물과 대화한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란다.

새 신 자랑하려고 그런가 보다 하고 오해할 테니

페북이든 어디든, 이런 글 저런 말 조금도 내지 말란다.

그런다고 시키는 대로 할 몽탁 선생도 아니다.

 

 


 

한 뭉텅이 이상호

 

 

저들에게 단합 소리 흔들며 뛰어든 거라

새벽 일찍 달려와 마주 서서 바라보는

울 넘어 백목련 한 뭉텅이로 피어 있는 꽃을 바라봐

 

온 우주가 가득 잔뜩 바람난 꽃들인 거라

저 지순한 봉우리가 온통 가득 뒤덮인

희디흰 세상을 촘촘히 열고 환하게 웃는 거야

 

올라온다는 소식이다 숨 가쁜 단내들이

거짓말처럼 가벼운 걸 읽어 내는 바람을 봐

순간도 눈을 뜰 수가 없어, 눈부신 희디흰 모습

 

 


 

강의 이름으로 전홍규

 

 

머리 없는 강이 기수역에 닿자

바람 흘려주던 나무들 뒷걸음치고

벌린 대기도 구름에 납작 엎드렸다.

흐름은 늙은 생각처럼 무너져

안에서 제 걸음에 걸려 주춤거리면

긴긴 강의 이름으로 불리던 몸은

눈이 멀고 귀가 닫혀 기억을 앓는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마른 흙

돌부리 거침없이 뿌리치고 달렸던가.

한때 소용돌이에서 하세월 했지만

어디에도 목숨 게으른 삶은 없어

이제 허공에 침묵마저 던져야 할 때,

유역 가다듬고 잠영을 시도해야 할 때,

흐름이 덜 꾼 꿈인 듯 출렁한다.

그렇게 불릴 이름마저 해수면에 누워

잊히는 일에는 더 짠맛이 나고

깊은숨 더디게 다 지워지고 있다.

 

 


 

봄날에 정순영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귀가 시린 바람이 서성이는 골목길 나뭇가지를 짚으며

봄이 연두붉은 입술을 내밀고 걸어오고 있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았다

시냇물이 청량한 목소리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올려다보니 내가 해파란 하늘에 한 점 구름으로 흐르고 있다

나를 만드신 이에게 살아서 들리어 가고 싶다

 

 


 

물의 부력 지소영

 

 

운문사 물레방앗간 동네로 시집간 언니는

산등성이 품은 산달의 예비 엄마

출렁거리는 양수에서 솔잎 파란 물소리 흘린다

 

황소 고삐 자전거 고무신 발자국

냇둑은 농촌의 든든한 의자가 되곤 했다

 

물레방아 로프 내리면

폭포수 태양 줄에 매달려

발레리나가 되었지

해저의 궁전이 저처럼 눈을 멀릴까

 

물갈래마다 떠 올리는 둥근 힘

반동으로 밀어 내는 이음줄

중력을 포개는 신성한 의지다

 

물레는

나이테 뭉글리며 익힌 만큼 풀어 돌리는

둥글둥글 함께 잇는 곡조

삐거덕삐거덕 대물림을 하고

 

오르락내리락 물 시소에

물 위의 요정 소금쟁이도 곡예 한다

 

너도 나도 측량 못하는 합력의 앙상블

 

 

                            *월간 우리6월호(통권 제44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