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슬거울
-장 미셀 오토니엘
구球는 어디서든 날 비추는 거울이었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전시관 한가운데
구슬 속 나를 찍다가 나를 찍는 구슬을 보네
수많은 거울 속에 대책 없이 갇혀버린
사방에서 되비치는 내 모습에 내가 놀라
그 자리 얼굴을 들고 서 있을 수 없었네

♧ 선흘곶자왈
낮에는 새들 천지 밤에는 풀벌레 천지
지향성 마이크로 저들의 소릴 채록한다
4․3 그 파일을 열듯 새가슴 쓸어내린다
필터 없이 앞사람과 3미터 거리를 두면
가끔은 딱따구리 끌끌끌 혀 차는 소리
몇 년쯤 지나고 나면 이마저 사라질 것 같은

♧ 매화노루발풀 꽃
눈 족은 사람에겐
눈길 한 번 주질 않네
새미오름 둘레길 칼선다리 폭포 근처
초여름 문턱에 기대어
큰냥* 하는 것만 같네
---
* 큰 체 또는 거만한 행세를 가리키는 제주어

♧ 어느 봄날
근육은 더 늘려도 테이프는 늘리지 마라
제주농업기술센터 스포츠 테이핑 강의시간
강사의 말 한 마디가
꼭 무슨 진언 같다
일자형 테이프 두 개
30센티 15센티 길이
단무지 장무지신근 해부학적 코담배갑*
낯설은 방아쇠증후근
불러낸 저 이름들
더러는 받아 적고 더러는 흘려보내며
그러다가 툭 하고 볼펜을 떨어뜨린다
딸까닥
총을 쏠래도
당길 수 없는 봄날
---
* 손등 엄지 위쪽 삼각형 테두리로 움푹 패인 공간.
이곳에 마약을 올려두고 흡입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국제시장 돼지국밥
먹는 것 하나에도 시대상이 묻어난다
6․25 그 난리 통에 부산까지 피난 와서
북녘 땅 고향 그리며
설렁탕 대신 먹었다는
펄펄 끓는 뚝배기에 베지근한 사골국수
눈물 반 그리움 반
게눈 감추는 수육 몇 점
남포동 돼지국밥을 제주에서 먹는다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작가,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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