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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의 시(3)

by 김창집1 2025. 10. 19.

 

 

 

 

친구들이 나에게

밥이라 한다

그래, 나는 밥이다

한여름 뙤약볕에 목마름 이겨내고

할퀴며 쥐어뜯는

비바람도 이겨냈다

한 톨 한 톨 내 낱알

드디어

용광로처럼 끓는 물

다 이겨내고

이 세상 밥이 되었다

 

 



사람꽃

 

 

눈뜨고 보는 세상이

바로 봄날이다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다

우리들은 모두 피어난다

향기가 난다

 

 

 

궁상떨기

 

 

  이즈음 나의 시는 침묵을 앓고 무뚝뚝해졌다 탄력성을 잃었다 웬 형상이 그려지다가 무기력하게 입 다물고 돌아서 버린다 가뭄이 길어 농촌이 아우성이라는 뉴스가 끝나자마자 빗발이 창문을 두드린다 내 사유思惟가 급히 만발해진다 사물 하나 울타리를 넘나드는 게 들린다 오 누가, 무엇이 잉태될 것인가 펜을 단단히 움켜쥐고 기다린다 창밖을 서성이다 끝내 창문을 못 뚫은 시가 다시 돌아간다 아, 너의 침묵을 또 보았다 부디 처연한 상처를 입고 돌아갔기를 빈다

 

 



불면증

 

 

평생을 불러다 쓰는 잠이

부르면 다가와서 서성대는 잠이

낡고 비루해졌다

 

어디 갔다 다시 오는지 몰라도

요즘은 불러도 못 들은 척

하여간 청개구리 같은 내 잠

 

언젠가 세파가 산산해지는 날

내가 부르지 않아도

안개꽃처럼 피어나며

이 불면의 밤 데리고 떠나겠지

 

 



누설의 끝

 

 

  긴 세월 밤길 헤매는 나를 쌍심지 올리고 보던 별들이 이제 추레한 내가 별 볼 일 없는 듯 서서히 나를 누설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있는 별이 나를 반짝이면 중간 별 먼 끝별까지 잇달아 나를 반짝인다 별들은 말을 하고 싶으면 반짝거리는 게 습관이다 별들이 반짝이는 건 다 대화다 별별 나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밤하늘엔 잡설과 평설이 무성하다 별 하나 삽시에 한라산 너머로 떨어진다 별들은 저들끼리의 누설은 다 끝났는 듯 한 번 흠칫하고는 다시 평온하다 그래, 나에 대한 누설도 다 끝났을 것 내가 저리 떨어져도 그럴 것이다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