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의 말
다시, 바다로 왔다.
모든 시는 안으로 잠수하는 일.
물속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떠다닌다.
2025년 가을
허유미

♧ 숨비소리
파도는 조용히 철썩인다
엄마는 숨비소리 작게 내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살기 위해
죽기 위해 매달리는 바다

♧ 섬
섬이 있다
내가 섬이라고 모르고 자라던 곳에
섬이 있다
밤새 돌아눕기를 반복하며
섬을 가늠했다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절벽 같은 잇몸만 남은 할머니가
내 몸을 긁어 주다 거웃 털을 만지면 좋아했다
할머니는 밤마다 소녀를 토하여 나를 먹였다
와글와글 짠맛에 침을 뱉으면
높하늬바람이 일어
파도가 점을 뚫을 것처럼 몰려오고
할머니는 웃었다
몸 안에 웃음은 남기지 말아야 할 것처럼
눈알이 빠질 듯이 고래고래 웃는 소리가
”니년도 니년도” 메아리로 소용돌이치는 것을 듣게 되면
갓 태어나 섬이 내뱉는 말을 배우는 거라고
섬이 있다
붙잡힌 적 없는데 끌려온 곳에
섬이 있다
밤새 신발을 찾으며 섬을 가늠했다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면 엄마가 나를 당기며
“섬이 어디 있다는 거야?
내가 될 너밖에 안 보이는구나"
어디까지 섬일지 모를 섬이 있다

♧ 뿔소라 편지
두린* 딸아
뿔소라는 수족관에 오래 두면
뿔이 사라져 버린다
바다가 부아 나 창자를 뱉을 기세로
광란이 나면
배도 뒤집히고 물고기도 뒤집혀 튀어 오르고
반짝이며 살던 것들이
물살에 휩쓸릴 때
뿔소라는 바위 고냥에 뿔을 뻗어
물살을 견디며 애를 쓰며 산다
그게 뿔소라 사는 낙이지
그런 뿔소라 한 망사리 캐며 산다고
깊은 눈물 바다에 가라앉히지 말아라
바다에 있으면
세월에 휩쓸리지 않는다
세월이 나 못 데려가고 혼자 가는데
뭐라도 먹여 보내야 할 것 같아
무릎 내주고 이 몇 개 내주고 한 거다
내주고 나면 견디고 애쓰는 힘을 알아
내가 무서워 바다 광란도 멈추는 거다
어깨가 뒤틀린 게 아니고 뿔이 돋고 있는 거다
소라 철에는 사는 낙이 파도를 펄쩍 뛰어넘을 때이니
설운 아기처럼 전화하지 말아라
---
*'어린‘의 제주어

♧ 게우*
상처가 있다
얼굴 절반을 파묻혀 먹고 있다
먹히고 있어 보인다 해도 변명은 없다
상처 난 까닭을 알기 위해
어느 상처가 크고 작은지
재기 위해 우는 시간 대신
너와 게우를 먹겠다
하룻밤 게우를 들여다보아도
게우 생김새를 묘사할 수 없고
색깔조차도 말할 수 없는데
게우가 바다의 상처라고 가슴에 새긴다
거센 파도와 맞설수록 깊은 바다를 알수록
게우 맛은 진해진다
거세고 깊은 만남에 상처가 없다면
바다는 문장이 아니라 단어로 굳어졌을 거다
문장은 속을 볼 수 있고 단어는 속을 볼 수 없다
상처로 내 속과 네 속을 보아도
우리는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상처받아도 상처를 줘도
삶이 성에 차지 않아서
너와 게우를 먹겠다
게우 맛은 상처가 상처를 걱정하는 맛
바다에서 놓치고 흩어진 것들은 상처로 남아
파도가 달려오다 넘어지는 것은
뭍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우의 말
나는 파도인지 뭍인지 고민하는 시간 동안
너와 게우를 먹겠다
---
* '전복 내장의 제주어.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 보나』 (걷는사람,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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