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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강연익 시집 '노을을 붙잡고'의 시(2)

by 김창집1 2025. 10. 24.

 

 

끈을 붙잡고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

끈을 놓쳤다가 다시 용기를 내어

끈을 잡는 사람들, 끝내 끈을 놓치고

깊은 나락으로 빠져 헤매는 사람들,

끈을 잡고 있어 고마워하는 사람들

자기의 영원한 동아줄을 만들려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질주하고 있다

먼저 가서 끈을 차지하려는 것일까?

삶의 끈을 단단히 붙잡아 매어두려고

생이 한순간의 외로운 떨림으로 인하여

상처가 되어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날이면

아니 갈 수 없는 낙오자가 되어

인연을 끊고 이별해야 한다.

 

 



지나는 자리

 

 

초승달 사이 어둠은 깊어가고

날이 새면 아름다운 빛이 되는 곳

여기에 빛과 더불어 희망이 자란다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의 상처를

근본인 뿌리가 상처를 잡아 주듯

철이 들었나 싶은데 미궁 속을 헤맨다

 

시간의 빈자리 이별이라 생각하지만

또 다른 시간이 와서 채워 주리니

인생은 돌아보면 짧은 세월이었다

 

미처 하고 싶은 말 가슴에 묻어둔 채

내 심장소리만 요란하게 뒤척이는데

숱하게 오고 간 흔적들이 지나간다.

 

 



눈 내리는 날

 

 

구름을 몰고 눈은 쌓이는데 대륙을 건너온 눈발 사이로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소식에

기다리며 시간은 흐르고

 

함박눈이 대지를 때리다 닫힌 하늘이 열리고

잠시 눈이 그치자 질투라도 하듯 그 틈을 무섭게 달려드는 검은 구름들 사이로 선녀가 내려와

반갑게 손을 잡고 눈길을 거닐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하얀 동화의 나라에서 손 흔들며 떠난다

 

그때 오고 간 발자국 다 지워지고 길을 잃은 슬픔에

나를 반겨주는 곳에서 서성이다 하얀 세상에 풀리는

그날 천사가 기다리는 하늘로 떠나리라.

 

 



粟米

 

 

  조를 파종하기 위하여선 물이 잘 빠지도록 도랑을 세워 이랑을 만들고 소나 말이나 사람이 흙을 다지고 파종을 하며 장마로 종자가 유실된 곳에는 따가운 여름볕에 종자를 솎아 심어주고 김을 매고 나면 피부는 아프리카 검둥이가 되곤 했다

 

  조는 오곡이나 약초여서 병충해가 없고 빨리 자라서 풍요롭게 황금빛 가을로 익어가며 익을수록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개를 숙인 선비의 자태이고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에도 노란 영혼이 깃들어 있다

 

  씨 뿌리고 가꾸어 거두어들이는 자연의 경건함은 곧 우리들의 삶의 경전이기도 하고 이제는 볼 수 없는 유년의 기억들도 잊혀 가는데 약초보다 더 귀한 조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 어느 날 오일장에서 할머니가 파는 조 알갱이를 보며 유년의 힘들고 아팠던 기억을 느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였다.

 

 



이별 뒤에는

 

 

철들었나 싶은데 초록은 바래지고

계절은 황금빛 열매를 맺게 하지만

갈색 가지에는 낡은 노을이 자리 잡는다

 

모든 날이 바뀌어 자리를 옮기고

영원할 수 없다는 절망이 가슴을 찍는데

잎새는 바람에 덧없이 사라져 간다

 

이 빈자리 이별이라 생각하지만

다시 동쪽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시간이

이별의 쓸쓸한 외로움을 채워 주리라.

 

 

            *강연익 세 번째 시집 노을을 붙잡고(그림과책, 2025)에서